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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국가의 재난지원 기부금 모집에 대한 고찰 / 우석진

등록 2020-04-28 17:50수정 2020-04-29 02:41

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긴급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오래 걸렸던 긴급재난지원금의 윤곽이 드러났다. 우여곡절 끝에 전 가구에 지급하고 일부는 국민들 기부를 통해 환수하는 것으로 추진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국민들, 특히 사회보장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문제는 환수 방법이다. 현재 안에 따르면 국민들이 수령 거부의사를 표시하거나 신청하지 않는 경우 해당 금액을 기부 처리하는 방식으로 환수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국민들은 기부를 통해 다른 사회구성원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어 좋다. 또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렇게 조성된 기부금을 고용보험기금으로 전입하여 고용유지와 실직자 지원 관련 예산 등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논리상 국민들의 기부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국가는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는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기부금품법에 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을 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및 그 소속 기관·공무원은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항에서 예외를 두고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국가는 해당 사항이 없다. 우리 기부금품법은 원칙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같은 법 5조 2항은 법령에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 금품 접수를 허용하고는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사용용도와 목적을 지정하여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경우로서 기부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경우”에 금품을 접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는 하다. 예컨대,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피해 구제를 위해 고용유지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를 지정하는 경우 국민의 기부를 접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모집은 할 수 없다.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는 단순 접수를 넘어 기부 캠페인 같은 모집까지 계획되고 있기 때문에 이 법령이 규정하는 요건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부금 접수가 가능하다고 해도 접수한 기부금을 정부가 원하는 대로 고용보험기금으로 전입시킬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단 기부금이 고용보험기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없어 보인다. 고용보험법 78조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은 보험료, 징수금, 적립금, 기금운용 수익금과 그 밖의 수입으로 조성하게 되어 있을 뿐 기부금을 받아 기금에 넣을 수 있는 경로는 없다. 적립금이 대량실업의 발생이나 그 밖의 고용상태의 불안에 대비한 준비금으로 이번 목적에 맞기는 하다. 하지만 지출비용을 초과하는 여유자금을 적립하게 되어 있어, 기부금을 적립금을 통해 고용보험기금에 전입시키기는 어렵다. 방법은 기부금을 잠시라도 정부의 일반회계로 받고, 다시 일반회계에서 고용보험기금으로 전입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남은 문제는 정부가 기부금을 일반회계의 수입으로 받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통상적으로 일반회계는 조세를 통해서 충당한다. 정부가 재화 및 용역을 판매하거나 벌금, 몰수금 및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자산을 매각한 대금을 수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기금의 경우에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서 부과하는 부담금이나 보험료를 수입원으로 한다. 하지만 일반회계의 주 수입원은 당연히 조세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는 기부금 모집을 통해 사업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일단 현행 법령은 그런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조세법률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수입은 의회의 통제를 받도록 해놓았다. 만약 정부가 행정 편의를 위해 이를 우회해 국민들에게 기부금을 모집하여 사용한다면 우리 헌법이 정한 조세법률주의에 정면으로 반하게 된다. 지금은 선의에 의해서 기부금을 받게 되겠지만 나중에 악의를 가진 정부가 의회를 거치지 않고 기부금을 거둘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 이 문제는 기존 법령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드는 경우에도 피해 갈 수 없다.

해결책 중 하나는 기존 법인이나 단체를 지정하든가 아니면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서 거기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기부 처리를 하고 조성된 기부금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큰 영향을 받은 저소득층과 자영업자를 위해 사용하면 된다. 다만 고용안정을 위한 재원은 국민의 기부금이 아니라 정부가 따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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