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l 한양대 의대 교수
1973년 10월22일, 한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두꺼비집에 퓨즈 대신 구리철사, 영천 정부곡물 도정공장 화재원인.” 여기서 ‘퓨즈’는 과전류가 흐르면 제일 먼저 끊어져 전기장치를 보호하고 합선으로 인한 화재를 방지하는 장치다. 옛날에는 전기가 자주 끊기고 그때마다 구하기 힘들어 대신 구리철사로 묶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과전류가 흘러도 전기는 나가지 않았지만, 불타버린 도정공장과 같은 신세가 되기 십상이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은 인류사의 비극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미국은 28일 현재 확진자 수가 100만명을 넘었고 매일 1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과 같은 기존의 선진국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한국의 성적이 제일 좋지만 언제 2차 유행이 다시 시작될지 몰라 아슬아슬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는 백신과 신약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감염병 대유행을 백신과 신약 개발로 막으려는 것은 퓨즈 대신 구리철사를 갖다 대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미 급속한 변이를 시작했다. 중국 국립생물정보센터에 따르면, 세계 과학자들이 4300개 이상의 돌연변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는 백신을 개발해도 효과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백신과 신약이 일시적인 효과를 본다 해도 코로나19보다 더 치명적인 니파(치명률 77.6%), 조류독감(H5N1. 치명률 52.8%), 에볼라(치명률 40.4%) 등 수없는 바이러스들이 깨어나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한번 명토 박아주자. 문제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작금의 종말론적 위기인 감염병의 창궐, 미세먼지, 핵전쟁과 방사능 누출 등과 같은 거대 재난 뒤에는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저지르는 탐욕스러운 자본이 있고 그 뒤에 이와 결탁한 고삐 풀린 과학이 있다. 더욱이 질병을 세포, 유전자, 염기서열의 이상으로 설명하는 주류 과학의 환원론적 접근은 코로나19로 대변되는 지구적인 재난에 철저하게 무력했다. 3개월 만에 결과보고서를 내야 하는 연구는 짧은 인과관계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그칠 수밖에 없고, 소의 등심, 양지살 등 각 부위를 모두 모아놓는다고 해서 결코 소가 될 수 없듯이 그런 과학으로는 코로나19 유행과 같은 대규모 복잡계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백신과 신약 개발은 이런 실패한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데도 다시 바이오헬스와 원격의료라는 구리철사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 대통령을 누가 좀 말려달라!
그러면 어떡할 것인가?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야기한 문제는 그것을 초래한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비주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간 연구비를 못 땄다고 무시했던, 그래서 주류에서 밀려나 잊혔던 늙은 스승이 있는 골방을 이제라도 찾아 나서야 한다. 짧고 부분적인 인과관계가 아니라 ‘복잡한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돌아와야 한다.
둘째, 취약성 속에 답이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과부하가 걸리는 순간 가장 먼저 망가지는 부품은 퓨즈이고, 점증하는 사회 불평등과 ‘강등된 인류(약자)’의 고난이라는 요소로 구성된 폭발성 혼합물이, 현 세기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확신했다. 이런 약자들이야말로 현재의 모순을 가장 농축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그들에게 답을 물어야 한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들은 재택근무,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 “잊혀진 노동자”다. 장기시설수용자이고 감염병이 창궐해도 하는 일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청소부, 택배노동자다. 그러나 그 질문은 인간만이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자 타이 해변으로 돌아온 멸종 위기 장수거북, 아카풀코 해안의 푸른 형광빛 파도로 다시 돌아온 플랑크톤, 스모그 걷힌 인도에서 30년 만에 시야에 나타난 히말라야산에도 물어야 한다.
위기의 시기에 퓨즈처럼 가장 먼저 죽는 이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이들은 주류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프면 제일 먼저 붓는 편도(扁桃)”이고, “가장 먼저, 가장 늦게까지 아픈 시인”이며, 마침내 인류 생존의 해법을 간직한 이들이다. 그래서인가?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아픈 곳이 중심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