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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리의 칼럼] 개 / 김훈

등록 2020-05-11 05:01수정 2020-06-28 16:25

요즘엔 개를 개라고 하지 않고, 애완견이라고 하지도 않고, 반려견이라고 한다. 행정용어도 반려견이다.

이제, 개들의 자태는 우아하고 품성은 교양 있다. 개들은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 않고, 남의 동네 개들끼리 마주쳐도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개들은 먹을 것을 봐도 슬며시 외면하고, 목줄을 풀어줘도 멀리 가지 않는다. 개들은 여름옷 겨울옷을 갈아입고, 외출할 때는 신발을 신는다. 개들은 미용실에 가고 목욕탕에 간다. 강북에 사는 개들도 강남 개처럼 보인다.

어느 쪽 개건 간에 중성화 수술을 받은 개들은 한평생 흘레붙지 않고, 새끼 낳지 않고, 젖 먹이지 않는다. 암컷도 아니고 수컷도 아니어서, 무성인 개들의 마음속에 어떤 그리움, 기다림, 목마름, 복받침 같은 것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캄캄해진다. 개는 개가 아닌 것이 됨으로써 인간의 개 노릇을 할 수가 있다.

나는 한때 개를 길렀다. 영리하고 복종심이 강한 개였다. 내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허리까지 뛰어오르면서 경의를 표했고, 손등을 핥아서 친밀감을 표시했다. 나는 나를 그토록 좋아하는 개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고 갚아줄 수가 없었다. 나는 개를 멀리 사는 친구에게 보냈다. 개가 안 가려고 엉버티어서 마취해서 싣고 갔다. 나는 마취에서 깨어난 개가 나와 나의 집에 관한 기억을 모두 잊어주기를 바랐다.

얼마 전에 전화해 봤더니, 개는 새 주인 집에서 잘 살다가 자연사했다고 한다. 나는 비로소, 개로부터 목줄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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