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인기척 / 김진해

등록 2020-05-24 18:21수정 2020-05-25 02:35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소리나 기색. ‘기척’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사람 소리임을 강조하려고 ‘사람인’자를 덧붙였다. ‘인적’이란 말에 ‘기운’의 뜻을 붙인 ‘인적기’(人跡氣)란 말이 있지만 쓰는 사람이 드물다. ‘인적’이 발자국이든 온기든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것이라면 ‘인기척’은 현재의 어렴풋한 기운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일이다. ‘분위기 파악’과 비슷하게 낌새를 알아차리는 건 연습이 필요하다.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가 인기척을 느끼는 건 아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코앞에 나타나도 고개를 쳐들지 않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잦다.

발소리를 내면 ‘발기척’, 숨소리를 내면 ‘숨기척’, 문을 두드리거나 문밖에서 이름을 부르면 ‘문기척’을 낸다고 한다. 북녘에서 ‘노크’는 ‘손기척’이다. 남도에서는 문기척이 날 때 문밖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걸 ‘비깜하다, 비끔하다’라 한다.

‘나, 여기 있소!’ 누구든 살아 있다는 건 말 그대로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있음’ 자체를 알리는 신호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사람은 괴물과 천사가 한 몸뚱이에 엉켜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반가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것과 단절되고 고립된 사람에게 인기척은 숙인 고개를 들게 하고 처진 다리에 힘을 넣어준다(정반대일 때도 있지만). 그럴 때 인기척은 신호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인간성을 추구하는 일이자 새로운 관계맺음을 향한 은유이다. 40년 전 새벽, 서슬 퍼런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거듭 기억한다. 나는 누구에게 인기척인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