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의 이름’으로 ”탐욕스러운 제도” / 전상진

등록 2020-06-14 16:37수정 2020-06-15 12:30

전상진 ㅣ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덥다. 고작 6월 중순인데 벌써 이렇다. 하지만 에어컨으로 무장한 연구실에서 일하는 내가 푸념하는 게 민망하다. 뙤약볕에서 고생하시는 여러분을 생각하면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6월9일 인천의 한 야외 선별진료소에서 간호사 세분이 쓰러졌다. 폭염 속에서 그토록 촘촘하고 불편하고 버거운 방호복을 입고 일을 하니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코로나 팬데믹과 씨름한 지 벌써 5개월이 넘었으니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방역 의료진과 관계자들의 고행의 시간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환자와 동료 시민과 공동체를 위한 그들의 ‘영웅적 헌신’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함으로만 답할 수 있을까. 코로나 팬데믹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들도 우리네와 같은 육신과 마음을 지녔을 텐데 끝없이 고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급작스레 닥친 일이라 준비도 못 했고 기존의 방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예외적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영웅들의 헌신이 문제를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예외적 상황이 상시적 상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헌신을 요구하는 건, 전문가의 윤리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당신들이 희생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죽어. 지금 힘들더라도 조금 참아. 이 위기만 넘기면 크게 보상해 줄게.’ 많이 듣던 이야기다.

우리는 방역 관계자의 희생을 탐욕스레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탐욕스러운 요구가 방역 인력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공무원, 교사, 경비원, 사무직, 생산직, 청소·콜센터·플랫폼 노동자 등 직종이나 정규직 여부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노동자는 그가 속한 조직의 탐욕에 노출되어 있다. 잦은 노출 때문인지 우리 대다수는 공동체나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더 구체적으로 우리네 제도와 조직은 미국의 사회학자 루이스 코저의 표현처럼 “탐욕스럽다”(greedy). “탐욕스러운 제도”나 조직은 얼추 세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 조직 구성원에게 “배타적이고 완전한 충성”을 요구한다. 특히 구성원의 시간과 충성 및 헌신을 과도하게 요구한다. 둘째, 경쟁하는 역할과 지위의 요구를 무시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른 조직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약화시킨다. 셋째, 구성원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려 노력한다. 그 결과 구성원은 조직이나 “제도의 상징적 유니버스” 안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

사회학자들은 종교적 분파(sect), 비잔티움의 환관 제도, 궁정의 재정 담당 유대인, 레닌주의자, “가정주부와 어머니”(가족에 속한 여성), ‘새로운’ 경영 기법으로 무장한 기업 등을 탐욕스러운 조직이나 제도의 예시로 든다. 그러니까 그것은 현대적 이익사회(Gesellschaft)에 남아 있는 전통적 공동체(Gemeinschaft)의 잔재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개인이 여러 조직과 제도에 동시에 속한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가족이 있고, 교수이고, 친구가 있고, 문구인(文具人)이며,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는 한국인이다. 어떤 하나의 제도나 조직에 배타적이고 완전한 충성을 바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현대적 삶의 필수 요령은 내가 속한 여러 제도와 조직의 다양한 요구를 나름의 방식으로 절충하는 ‘균형 잡기’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이 중요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를 고용한 조직의 탐욕스러운 요구 때문에 내가 속한 다른 제도의 필수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내 삶은 망가진다.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서울대학교 유명순 교수팀과 함께 수행한 ‘1차 경기도 코로나19 의료·방역 대응팀 인식 조사’ 결과가 6월11일 발표되었다. 심각한 스트레스, 나빠지는 건강 상태, 열악한 업무 환경 등 예상처럼 고행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응답자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한 내게 주어진 일을 계속할 것이다’라는 문항에 83.4%가 ‘그렇다’고 답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방역 관계자들의 헌신에 다시금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마음속으로, ‘어쩌다 챌린지’와 같은 이벤트로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무너진 삶의 균형을 되찾고 노고를 보상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의 이름’으로 남들의 희생을 탐하고 착취하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