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ㅣ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호서대 명예교수
요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인터넷 강의를 하면서 코로나 이후의 교육이 어떻게 변할지 다들 걱정이다. 한국교육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일제 잔재인 기능 위주의 주입식 대학입시 수능이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 가두며 반세기나 이어져 왔다. 석차를 없앤 북유럽 교육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수동적 경쟁교육을 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이웃·자연과의 좋은 관계를 지향하는 체험과 소통 위주의 ‘스스로 배움’교육으로 전환되었다. 대학입시를 없애 공부를 즐기는 ‘스스로 교육’이 자리 잡아 창의력을 높여줘야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다.
2000년 초 초등학교 선생님 몇 분이 내 연구실을 찾았다. 아산 거산분교는 학생이 몇 명 안 남아 폐교선고를 받았는데 이 학교를 생태혁신학교로 만들고 싶어 전근 갈 예정이니 자문위원장이 돼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환경십계명’을 만들어 발표하며 환경문화운동에 나선 나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분들이었다. 이렇게 도시에서 자원해 시골로 오신 6분의 선생님들과 의기투합해 생태교육중심의 ‘거산혁신교육’이 시작되었다. 우선 아이들 체험학습을 도울 유기농전문가, 숲해설가, 양봉전문가, 수의사 등 전문가들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했다. 봄이면 산에 들에 나가 나물을 뜯어 점심용 반찬과 간식인 쑥떡도 해먹고 고구마를 심었다. 가을엔 아이들이 배추도 심어 직접 김치도 담가 우리 집으로도 보내주었다. 급식도 ‘유기농 무상급식’으로 학교농장에서 직접 재배하고 나머진 주변의 유기농 농민들이 생산한 로컬푸드로 공급했다.
당시 난 매달 한두 번씩 환경과학수업도 진행했고 지금은 교과서에 등재된 ‘김치 된장 청국장’ ‘지구를 위하여’ 등 재미있는 환경노래를 만들어 직접 기타 치며 자연스러운 삶의 중요성을 아이들과 공유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씩 학부모들을 모아 ‘밥상머리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자 체험 위주의 발표와 토론공부에 재미가 붙어 아이들이 방학이 오는 게 제일 걱정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전국에서 선생님들이 버스를 대절해 거산초교의 수업방식을 배우러 왔다.
이렇게 거산분교는 3년 만에 150명이 넘어 본교로 승격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몇 년 뒤엔 교육감 선거에 나선 분이 찾아와 거산의 혁신교육에 대해들은 뒤 ‘유기농 무상급식’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당선되자 혁신학교는 전국으로 퍼져나가 700여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혁신교육은 위축되었고 일제 강점기와 독재정치의 전유물이었던 전국학력고사가 부활하면서 ‘김치 된장 청국장’ 노래도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몇 년 전 아산의 거산초가 전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학교로 뽑히고 미래의 자연학교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특히 열 명 남짓했던 초기 거산의 동네 출신 졸업생들이 다들 한국뿐 만 아니라 외국 명문대에 합격해 기쁨을 더해 주었다. 당시 이 학생들이 거산 졸업 후 입시지옥인 중고교 생활을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난 오래전 졸업식 때 이 학생들이 써 책으로 묶어준 ‘감사의 편지’를 꺼내 읽어 내려가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 유물인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그대로 남아있어, 아이들 자존감을 형성해주지 못해 질문이나 발표 등 자기표현에 매우 서툴다. 갑자기 찾아온 비대면 수업으로 평등교육 실현의 기회가 찾아왔고 몇 년 뒤엔 고교졸업생수가 대입정원보다도 작아진다고 한다. 이참에 지옥을 만드는 무한 경쟁의 주입식 교육을 버리고 독일, 북유럽식으로 대학입시 자체를 없애버리고 점차 무상교육으로 바꾸자. 그리해서 아이들을 입시 생지옥에서 구해 기후위기를 극복할 자질을 길러주며 4차산업혁명 사회가 원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체험과 발표·토론 위주의 ‘스스로 교육’으로 전환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