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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초등교육과 온종일 돌봄 / 양난주

등록 2020-06-22 18:03수정 2020-06-23 16:05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대표발의한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초등 아동의 온종일 돌봄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고, 교육부 장관에게 온종일 돌봄 기본계획 수립의 책임을 맡겼다. 지자체장은 교육감과 협의하여 지역의 온종일 돌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지원센터를 설립할 수 있으며 온종일 돌봄시설의 설치 기준, 인력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조례로 정한다고 하였다. 당장 한국교총을 비롯한 교사노조가 교육과 돌봄은 전문영역이 다르니 돌봄을 학교나 교사에게 떠넘기면 안 된다며 항의했다. 교육부 장관에게 책임을 맡길 게 아니라 돌봄이니 여성가족부 장관이 해야 한다, 온종일 돌봄은 학교가 아니라 지자체가 책임져야 한다며 의견이 분분했다.

이 논란을 보자니, 2년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안했던 ‘초등생 3시 동시하교안’이 떠올랐다. 위원회는 초등학생들 하교 시간이 1, 2학년은 오후 1시, 3, 4학년은 2시, 5, 6학년은 3시로 제각각이니 저학년 놀이학교 등을 통해 오후 3시로 맞추는 제도 개선을 하자고 제안했다. 부모의 돌봄 공백을 줄이고, 방과 후에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어지는 과도한 사교육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무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는 교사,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학원, 교육자치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교육청, 심지어 맞벌이 가정의 아이 때문에 내 아이 학원 갈 시간을 뺏긴다는 일부 비취업 학부모까지 각양각색의 항의에 부딪혔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는 이미 부모의 손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아동에 대한 보육과 교육은 공적 재원에 의해 보편적인 사회 제도가 담당하고 있다. 0~5살 아동에 대한 무상보육, 초·중등 의무교육, 게다가 2019년부터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단계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대학교육도 국가가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2018년부터 지급되는 아동수당까지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모든 국민이 태어나서 클 때까지 돕고 있는 셈이다. 그 가운데서 초등교육은 6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아동을 책임지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공적인 제도다. 2019년 기준으로 전국 6087개 학교 가운데 국공립학교가 98.7%고 18만6천명이 넘는 교사가 교육공무원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이 전체의 10%도 되지 않고, 유치원 아동의 72%가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불평등과 위험이 커진 현대 사회에서 모든 아동의 안전과 역량을 동등하게 강화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자 미래 사회의 격차를 줄이는 길이다. 공교육 본연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할을 강화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과 사교육에 맡겨진 아동의 시간을 좀 더 공적 제도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아동에게 좀 더 나은 돌봄과 교육을 공적으로 보장하는 것, 여기에 ‘온종일 돌봄’의 정신이 있다.

지금은 심하게 어긋나 있다. 아무리 빨라도 저녁 6시에 퇴근하는 부모가 대다수인데 1시에 아동을 교문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우리 사회 변화의 모든 추이는 앞으로 남녀 모두 직업을 갖고 일하며 자녀 양육에 구분 없이 참여하게 될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 현재의 사회 제도는 부모의 노동시간을 더 줄이고, 아동에 대한 공적 보호의 시간은 더 늘려야 한다.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장 노동시간을 가진 우리나라의 연간 초등교육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상 675시간으로 2018년 기준 OECD 평균인 783시간보다 짧다. 789시간인 유아교육시간보다도 짧다. 부모의 노동시간과 아동 공교육 시간부터 그 격차를 줄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아이와 가족이 존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동을 공적으로 보호하는 책임과 시간을 늘려야 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아동에 대해 책임지는 초등교육은 여기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아동이 더 보내는 시간을 교육시간의 연장으로 할지, 돌봄교실의 확대로 할지, 방과후 프로그램의 강화로 할지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지는 좀 더 전문적인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하건 공교육의 사명을 실현하고 아동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아동을 안전하게 미래 인재로 키워내는 데 요구되는 초등교육의 공적 역할에 우리 사회는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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