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리얼 ‘첵스’ 파맛 출시의 뒷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16년 전 신제품 홍보를 위해 벌였던 온라인 투표 마케팅에서 ‘밀크초코맛’의 ‘들러리’로 세웠던 ‘파맛’ 후보가 뜻밖에 높은 표를 얻는 일이 발생했다. 한 커뮤니티 회원들이 장난삼아 파맛에 몰표를 준 것이다. 당황한 업체 쪽이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준비된 신제품을 당선에 올리자 ‘부정선거’라며 네티즌들에게 십여년간 놀림감이 됐는데 실제 파맛 제품이 나온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교란작전’이 마케팅 전략을 좌초시키는 일은 드물지만 가끔 일어난다. 4년에 걸친 송사까지 벌어진 ‘펩시 포인트 사건’이 대표적이다. 발단은 1995년 가을 첫 전파를 탄 티브이 광고다. 펩시 로고 티셔츠를 입은 고등학생이 가죽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다. 화면 아래에는 75, 1450 등 숫자가 뜬다. 마지막에 학교 앞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군용 제트기인 ‘해리어 수직이착륙기’에서 학생이 내리며 말한다. “버스보다 낫네!” 그 아래 찍힌 숫자는 7,000,000. 펩시 콜라를 사면 10센트를 1포인트로 환산·적립하는 이벤트로, 포인트를 쌓아 받을 수 있는 선물 각각에 필요한 포인트를 공개한 것이다. 구매 비용의 일부를 포인트로 적립해 선물을 주는 것은 지금도 흔히 쓰는 마케팅 수법이다. 당시 문제가 된 건 ‘15포인트 이상만 있으면, 모자라는 점수는 1포인트당 10센트로 환산해 현금으로 지불해도 좋다’는 항목이었다.
얼마 뒤 시애틀에 사는 대학생 레너드가 15포인트와, 700만포인트를 바꿀 수 있는 70만달러짜리 수표를 펩시회사로 보내며 해리어기를 달라고 했다. 당시 해리어기의 가격은 약 2500만달러. 진짜 받을 수만 있다면 산술적으로 40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투자인 걸 간파한 레너드가 투자자들을 모아 만든 돈이었다. 설마 누가 700만포인트를 응모하랴 싶었던 펩시는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여 돌려보냈지만 레너드는 허위 광고와 사기, 계약 위반 등으로 회사를 고소했다. 회사는 황급히 광고의 해리어기 포인트에 0을 3개 더 붙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마이애미 지방법원을 거쳐 뉴욕 연방법원까지 올라간 이 소송에서 판사는 펩시의 손을 들어줬다. 광고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펩시사는 송사에 시달렸지만 만년 2등 펩시의 인지도가 올라가 ‘성공한 실패’ 마케팅의 사례로 꼽힌다. 마케팅 역시 조용히 묻히는 ‘무플’보다는 괴롭힘 당하는 ‘악플’이 낫다는 속설에서 예외가 아닌 듯하다.
김은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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