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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에서] 작은 학교가 부럽다 / 박주희

등록 2020-06-29 18:32수정 2020-06-30 13:30

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아이는 익숙하게 거실로 등교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무슨 수업인가 봤더니 체육이다. 모니터에서는 발야구 기본동작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체육 온라인 수업이라, 그것도 발야구 기본기를 랜선으로 익혀야 한다. 결국 동작 한번 따라 해보지 못하고 혼자 모니터만 보다 수업이 끝났다. 코로나19 시기 웃픈 체육 수업이다.

같은 날 친구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을 지나게 됐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아이들 네댓이 운동장에 나와 각자 캐치볼을 하고 있다. 마스크는 끼고 있지만, 마음껏 소리도 치고 뛰어다닌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이 학교는 요즘도 전교생이 매일 등교 수업을 한다. 오후 4시까지 방과후 수업도 한다. 합창과 리코더 합주 같은 몇몇 방과후 프로그램을 빼고는 교육활동을 온전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전교생이 23명인 ‘작은 학교’라 가능하다.

경북 군위군 소보면에 있는 이 초등학교는 2년 전만 해도 여느 농촌 학교처럼 폐교를 걱정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 시범학교가 되면서 전학생이 늘기 시작했다. 자유학구제는 인근 큰 학교 학생들이 주소는 옮기지 않고 작은 학교로 전학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제도이다. 대신 작은 학교 아이들이 큰 학교로는 갈 수 없다. 경북도교육청은 지난해 처음으로 도내 초등학교 29곳을 시범학교로 지정해 운영했다. 스쿨버스 운행으로 통학 부담을 덜고 학생 중심의 실질적인 지원사업을 펼쳤다. 그 결과 한해 동안 모두 102명이 작은 학교로 전학했다. 둘 이상의 학년이 하나의 학급으로 운영되는 복식학급도 9곳 줄었다.

첫해의 이런 성과를 토대로 올해는 초등학교 97곳, 중학교 11곳을 자유학구제 학교로 지정했다. 덕분에 현재까지 작은 학교 108곳의 학생 수가 377명 늘었다. 안동의 한 중학교는 전교생 100여명 가운데 절반이 큰 학교에서 온 전학생이다.

이처럼 작은 학교로 학생들이 전학 오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큰 학교는 흉내 내기 힘든 환경과 교육과정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군위의 초등학교만 해도 방과후 수업료가 없다.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같은 악기부터 로봇코딩과 미술, 체육까지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마치 개인교습 하듯 집중 지도를 받는다. 원하는 학생은 방과후 교과 심화학습 지도를 받고, 화상영어 수업도 한다. 여러 학년이 한 팀을 이뤄 과제를 수행하는 팀 프로젝트 활동도 다양하게 이뤄진다. 초등학교에선 드물게 과목별 이동수업도 하고 있다.

스쿨버스를 타고 전교생이 같이 움직일 수 있으니 체험학습도 자주 다닌다. 겨울에는 스키캠프, 여름에는 물놀이공원에서 2박3일 전교생이 어울려 놀다 온다. 학교 밥상도 집밥처럼 차려낸다. 대량으로 조리하는 큰 학교에 견줘 음식의 질에 더 신경을 쓰니 급식 만족도가 높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편식 버릇까지 속속들이 알고 살핀다. 웬만한 준비물은 학교에서 다 준비해줘서 집에서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

도교육청은 올해 이런 작은 학교에 예산 11억9000만원을 지원한다. 이 정도 예산으로 100곳이 넘는 작은 학교가 사라지지 않고 활력을 띤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교육지원이 아닐까. 더구나 작은 학교가 살아난다는 것은 곧 마을 공동체가 더불어 산다는 의미가 더해진다. 인구 소멸까지 걱정하는 지역에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등교 개학을 두고 말들이 많다. 바이러스의 불확실성만큼이나 부모들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온라인 등교를 계속할 수도 없다.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면서 사교육뿐만 아니라 공교육에서조차 더 벌어지는 교육격차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학교 온라인 수업에 학원 원격수업, 인터넷 게임까지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작은 학교 학부모가 된 뒤 친구는 학교 얘기만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작은 학교라서 가능한 재미난 행사나 소소한 일화를 듣다 보면 자랑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부쩍 작은 학교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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