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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자존감높은 칠칠한 노태우, 7·7선언 32돌 / 권혁철

등록 2020-07-06 15:00수정 2020-07-06 19:54

자존감 높은 칠칠한 노태우. 어느 한국사 강사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만든 암기법이다. 수험생들은 외울 것은 많고 시간이 없다. 수험생이 기억해야할 일들의 첫 글자들을 따서 하나로 묶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대북 정책인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7·7선언, 1988년 7월7일)과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1989년 9월11일)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런 암기법이 필요할 정도로 7·7선언(선언)은 잊혀졌다.

오늘은 선언 32주년이다. 선언의 주요 내용은 △남북 각계 인사 교류 △이산가족 생사확인, 서신, 상봉 주선 △남북교역을 내부거래로 간주 △북한과 미국, 일본 관계 개선 협조, 우리는 중국 소련 등과 관계 개선 추진 등이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 같다. 32년 전 발표 당시에는 분단 이후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선언은 북한을 타도대상이 아닌 함께 번영해야 할 동반자로 규정했다. 보수쪽은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1989년 3월 육사 졸업식에서 당시 민병돈 육사 교장은 졸업식사에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고 있다. 적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라며 선언에 정면 반발했다.

선언 이후 본격적인 남북교류가 시작됐고, 1990년 국가보안법의 처벌에서 벗어나 남북교류협력를 제도로 뒷받침하는 남북교류협력법과 남북협력기금법이 만들어졌다.

선언은 대북 포용정책의 효시였다. 이 포용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으로 계승·발전됐다.(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 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1991), 6·15선언(2000), 10·4선언(2007), 4·27판문점선언, 9·19평양선언(2018)으로 이어졌다.

선언은 국제질서 전환기에 우리 정부가 북방외교를 내세워 능동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관리한 첫 사례로 꼽힌다. 당시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는 등 냉전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선언은 대북·외교정책 역사상 최고의 백미이고, 우리의 진정한 통일정책은 선언으로 비로소 시작된 셈이다.(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7일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7·7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7일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7·7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물론 노태우 정권이 민족사적 사명감만으로 선언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선언을 계기로 국내 정치 주도권을 되찾으려고 했다. 노태우 정권은 1988년 출범 이후 남북학생회담 제안 등 대학가의 뜨거웠던 통일 논의에 떠밀렸고, 여소야대 국회(1988년 4월 총선)로 수세로 몰렸다.

노태우 정권은 1989년 봄 문익환 목사, 황석영 소설가 방북을 문제삼아 안기부·검찰·보안사 합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를 꾸려 험악한 공안정국을 끌고 갔다. 그해 4월 리영희 <한겨레> 논설고문은 한겨레의 방북 취재 구상을 도왔다는 빌미로 구속되어 160일간의 옥고를 치렀다. 당시 학생운동권과 재야세력은 선언이 무색하다고 비판했다.

요즘 선언을 애써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적대·대결·경쟁의 남북관계를 화해·협력·동반관계로 바꾼 7·7선언이 이런 대접을 받아선 안된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

친애하는 6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오늘 온 겨레의 염원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새 공화국의 정책을 밝히려 합니다.

우리 민족이 남북분단의 고통을 겪어온 지 반세기가 가까와 옵니다.

분단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숱한 시련과 고난을 주었으며, 민족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아 왔읍니다.

남북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번영된 통일조국을 여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 겨레 모두에게 맡겨진 민족사의 소명이 아닐 수 없읍니다.

상이한 이념과 체제로 분단된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남북으로 갈라진 겨레는 분단 그날부터 오늘까지 서로가 서로를 불신, 비방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고통스런 분단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읍니다.

남북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었으나 민족통합은 우리의 책임 아래 우리의 자주적 역량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의 밝은 시대를 함께 열어 가야 합니다.

이제는 민족 전체의 복지와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할 때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읍니다.

서로 문화와 역사가 다른 민족 사이에도 과감한 개방과 교류의 새 물결이 넘쳐흐르고 있읍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전쟁의 위험과 대결의 긴장이 상존하고 있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여야 할 역사적인 시점이라고 확신합니다.

동포 여러분.

우리가 아직 비극적인 분단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남과 북이 민족공동체라는 의식을 등진 채 서로를 대결의 상대로 여겨 적대관계를 격화시켜 온 데 있읍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며 겨레의 힘과 슬기를 모아 시련과 도전을 극복하면서 빛나는 역사와 문화전통을 창조해 왔읍니다.

따라서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을 이룩하는 민족공동체로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통일조국을 실현하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이 길이 곧 민족자존의 길이며 민족통합의 길입니다.

이제, 남과 북은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교류를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민족적 유대를 강화해 나갈 적극적 조처를 취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결의 관계를 지양해야 합니다.

북한이 책임 있는 성원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그것이 북한사회의 개방과 발전을 촉진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국제사회에서 남북은 상호간에 서로의 위치를 인정하고 민족 전체의 이익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친애하는 6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오늘 자주·평화·민주·복지의 원칙에 입각하여 민족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문화·경제·정치 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갈 것임을 약속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내외에 선언합니다.

1.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학자, 체육인 및 학생 등 남북 동포간의 상호교류를 적극 추진하며 해외동포들이 자유로이 남북을 왕래하도록 문호를 개방한다.

2. 남북 적십자회담이 타결되기 이전이라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이산가족들간에 생사, 주소확인, 서신왕래, 상호방문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주선·지원한다.

3. 남북간 교역의 문호를 개방하고 남북간 교역을 민족 내부 교역으로 간주한다.

4. 남북 모든 동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비군사적 물자에 대해 우리 우방들이 북한과 교역을 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5. 남북간의 소모적인 경쟁·대결 외교를 종결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발전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협력하며, 또한 남북대표가 국제무대에서 자유롭게 만나 민족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서로 협력할 것을 희망한다.

6.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으며 또한 우리는 소련·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한다.

나는 이상과 같은 우리의 조치에 대해 북한측도 적극 호응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북한측이 이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 온다면 보다 전진적인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임을 아울러 밝혀 둡니다.

나는 오늘의 이 선언이 통일을 향한 남북간의 관계발전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6천만 우리 겨레 모두가 슬기와 힘을 모은다면, 이 세기가 가기 전에 남과 북은 하나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공동체로 통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우리는 멀지 않아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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