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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같거나 다르거나] 낙선자가 낙선자에게 / 금태섭

등록 2020-07-09 05:00수정 2020-07-09 11:34

경제학을 전공한 제 친구는 우리 사회를 볼 때 평균 월수입 250만원으로 살아가는 커플의 입장에서 바라본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안정된 가계를 꾸리고 희망을 갖게 될지, 그래서 장래를 설계하고 아이 갖는 것을 꿈꾸게 될지 말이죠.

금태섭
정치인

김용태 전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어서니 이제 자연스럽게 ‘전 의원’이란 말이 나오는군요.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농담도 있지만 솔직히 재선에 실패한 직후에는 심리적 충격도 상당했습니다. 밖에 나서기도 부끄럽고 열심히 지지해주시던 분들께는 정말 드릴 말씀도 없더군요. 제 능력 부족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지냈습니다. 국회가 있는 여의도 쪽은 쳐다보기도 싫고 그렇게 열심히 읽던 정치 기사도 잘 안 보게 되더군요.

그러나 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제가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운 탓인지 한주, 두주 지나다 보니 이제는 그런 상심도 많이 옅어졌습니다. 요즘은 새로 국회에 입성한 21대 국회의원들이 등장하는 뉴스를 흥미 있게 보기도 합니다. 뭐 잘한 게 있다고 이것저것 지적을 하고 훈수를 두고 싶은 기분이 불쑥불쑥 솟구치기도 합니다. 역시 밖에 있어야 잘 보이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마침 한겨레에서 여야 정치인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 그런 면에서 무척 반갑습니다. 특히 김 전 의원님같이 합리적이고 성실한 분과 짝을 이루게 되어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습니다. 우리 정치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만, 특히 최근에 와서 우려스러운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한 토론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두 가지 일을 들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노조원들이 18일 오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제대로 된 인천공항 정규직화 대책회의 발족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 을 갖고 노동조건 후퇴 없는 정규직화 등 6800명 노동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모습을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노조원들이 18일 오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제대로 된 인천공항 정규직화 대책회의 발족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 을 갖고 노동조건 후퇴 없는 정규직화 등 6800명 노동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모습을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첫 번째는 소위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입니다. 청와대, 여야 정치권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격론을 벌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정규직과 다른 절차로 취업을 한 분들에게 갑자기 고연봉과 정규직의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은 어렵게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역차별이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반대편에서는 조금 더 배우고 시험에 합격해서 정규직이 되었다고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면서 젊은 세대의 ‘이기심’을 한탄합니다. 그런데 사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일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는 인국공 보안요원의 수는 1900여명입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수는 748만명을 넘습니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36.4%를 차지합니다. 1900명을 정규직화해도 747만8천여명이 남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기업과 노조,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양보와 희생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방향과 계획을 제시하고 이해관계의 조정을 시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토론은 간데없고 특정 공기업의 사례만을 놓고 상대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초라한 논란만 존재하는 것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 외벽에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15억원 대출 규제를 발표한 뒤 주춤하던 아파트 매매가는 강남3구 아파트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15억원을 다시 넘겼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 외벽에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15억원 대출 규제를 발표한 뒤 주춤하던 아파트 매매가는 강남3구 아파트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15억원을 다시 넘겼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편안한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을지, 왕복 3시간 출퇴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을지, 사회초년생들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살 곳을 마련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청와대 고위직들이 집이 몇 채 있는가에만 쏠려 있습니다. 공직자들이 정부 시책에 부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일들만큼 중요할까요. 발상의 대전환을 이뤄서라도 직장에서 가깝고 맘 놓고 아이들도 키울 수 있는 주거를 마련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할 텐데 정작 문제의 본질에 천착하는 정치인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복잡한 과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저는 우리가 주고받는 서신이 정말 중요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면, 설사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제 친구는 우리 사회를 볼 때 평균 월수입 250만원으로 살아가는 커플의 입장에서 바라본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안정된 가계를 꾸리고 희망을 갖게 될지, 그래서 장래를 설계하고 아이 갖는 것을 꿈꾸게 될지 말이죠. 비록 소속 정당은 다르고 사안마다 주장도 다르지만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젊은 세대를 위하여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오.

‘같거나 다르거나’ 코너에서는 결이 다른 두 정치인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용태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대화 서신의 형태로 다양한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의 차, 생각의 깊이를 나눕니다. 매주 목요일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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