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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끝 / 김진해

등록 2020-07-12 17:55수정 2020-07-13 02:39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지만 시간을 감각할 수는 없다. 감각할 수 없으면서도 알고 싶으니 눈에 보이는 걸 빌려다가 쓴다. 시간을 움직이는 사물로 비유하는 게 제일 흔한 방법이다. 하루가 ‘가고’, 내일이 ‘다가오고’, 봄날은 ‘지나가고’, 시간은 ‘흐르고’, 휴가를 ‘보낸다’는 식이다.

공간을 뜻하던 말을 시간에 끌어와 쓰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끝’이다. 애초에 ‘끝’은 ‘칼끝’, ‘손끝’처럼 물건의 맨 마지막 부분을 나타낸다. 영화를 끝까지 보거나 책을 끝까지 읽는다고 할 때도 영화나 책의 맨 나중 위치를 말한다. 조용필이 항상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끝’을 어떤 일의 클라이맥스로 여기는 우리의 성향을 반영한다. ‘오랜 수련 끝에 달인의 경지에 오르다’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처럼 ‘끝’이 앞일과 뒷일을 잇는 ‘문지방’ 구실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최초(원조)만큼이나 ‘최종’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시간에 처음과 끝이 있을 리 없지만, 사건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입학식과 졸업식을 거창하게 치르듯이 과정보다는 처음과 끝을 중심으로 기억한다. 개인이 사건과 역사라는 말 위에 올라타면 마른 나뭇가지처럼 삶은 ‘시작’과 ‘끝’의 연속으로 또각또각 끊어진다. 생로병사의 외줄을 타는 인간은 특히 ‘끝’에 주목한다. 죽음의 방식을 삶의 성패로 여긴다. 종료의 의미로 ‘끝이 나다’라고 하는데, 싹이 나고 털이 나듯이 끝도 ‘난다(!)’. ‘끝’을 ‘없던 것의 생성’으로 보는 것이다. 보통은 생의 끝이 불현듯 다가오는데, 누구는 의지적으로 끝을 냈다. 삶,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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