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경 ㅣ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지난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전날 성추행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어떤 관점에 서든 모두가 ‘박원순’과 ‘성추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때, 나까지 나서 굳이 한마디를 더 보태야 할까 싶어 오래 망설였다. 그래도 ‘당신 탓이 아니’라는,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좀 길게 건네보려 한다. 당신은 신상을 털고 의도를 의심하고 터무니없는 소설을 써대는 누군가의 말 때문에도 상처를 받겠지만, 당신이 지고 있는 가장 큰 짐은 ‘고소장을 접수한 다음날 그가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는 그의 선택을 한 것이고 당신 탓이 아니다. 그의 죽음에 당신의 책임은 없으며 그것은 온전히 그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는 ‘박원순’이었다. 1993년부터 서울대 조교 성추행 사건을 변론했고 승소하여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범죄일 수 있음을 최초로 알렸고, 서울시에 광역시도 중 가장 선진적이라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 대응 제도와 매뉴얼을 만들었던 그 ‘박원순’이었다. 그가 죽고 많은 이들이 ‘박원순마저…’라는 탄식을 내놓았던 것은 지난 시간 당신이 처했을 고뇌와 어려움을 반증한다. 많은 이들이 적어도 젠더 감수성에 관한 한 가장 앞섰던 현직 정치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의 의사에 반하는 그의 행위가 반복되었어도 이를 공론화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혹자는 ‘몇년을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라고 묻기도 하지만, 그가 ‘박원순’이라는 사실이 당신에게는 더 큰 장벽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더 긴 시간의 고뇌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더하여 그는 당신이 속한 조직의 수장이었고 얼마 전까지 소속 부서 직속상관이었다. 아마 고인도 똑같은 이유로 자신이 행한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박원순’이었기에 스스로 한 일이 더 용납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가고 없는 지금 누구도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그건 그의 선택이었다. 당신 탓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박 시장의 선택을 접하며 노회찬 의원을 떠올렸고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그 시대를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낸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정서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이 20살이었을 때 대한민국은 박정희 유신체제의 서슬 퍼런 억압이 판치고 있었고, 그들이 30살 때는 전두환 신군부가 유신체제를 연장시키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면 개인의 인생만이 아니라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과 가족의 인생까지도 송두리째 파헤쳐질 각오를 해야 했다. 그들은 그렇게 개인의 권리 이전에 집단의 이해를 먼저 생각하도록 훈련받으며 그 세월을 살아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된 이후에도 그들은 변함없이 그런 인생을 살았다.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을 걸었고 항상 어떤 조직의 수장을 자임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가족의 삶을 돌보고 살피는 데는 둔감했고 때로 무능했다. 그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그렇게 마감한 것은 그런 그들의 개인적 서사에서 보면 일관성이 있다. 자신의 과오를 정면으로 마주하기에 스스로 설정한 뜻은 너무 높았고 살아서 책임을 감당하기에는 가족과 동지들에게 끼칠 누가 앞서 떠올랐을지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지나온 어느 한 시대를 상징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 시대의 한계에 갇힌 사람들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박 시장의 선택은 온전히 그의 것이며 당신 탓이 아니다.
아마 당신은 앞으로 몇달 혹은 그 이상을 매우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의 한가운데 놓여 있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순간순간 그의 죽음이 원망스러울 것이고 미안할 것이며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선택과 그의 선택은 별개다. 당신이 부디 이 커다란 짐을 덜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