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 ㅣ 작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에 가까운 결정을 내려왔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결정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제가 없었다. 그 역시 자신에게는 최선에 가까웠을까? 죽음만도 못한 꼴이란 게 정말로 있단 말인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 그래도 살아남아 어딘가에서 조용히 삶을 이어가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족적을 누구보다 길게 남긴 만큼 단지 조용히 지낼 곳을 찾을 자신이 없었던 걸까? 더는 세상에 남지 않은 곳을 찾아서 죽음 뒤로 숨어야만 했던 걸까?
자신과 주변의 안위만을 챙긴 이기적인 유언장의 내용은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사회와 피해자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 어디쯤 반드시 표현되어야 했다는 질책은 너무나도 산 자의 관점이다. 이미 세상을 등질 결심을 한 이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몇 줄의 단상에 들어가기에는 아득한 문제였을 거라고 받아들인다. 죽음보다 바람직한 방식이 있을 수는 있어도 더 바람직한 방식의 죽음은 상상하기 어렵다. 장례의 형식 문제는 사소하게 느껴진다. 죽음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제례적인 관습의 타당한 형식까지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것들은 그가 안녕을 고한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모두’가 처한 문제는 이렇다. 우리가 대체 어떻게 안녕할 수 있단 말일까? 우리는 이 죽음 이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냥 눈을 감아버릴 수도 있다. 좋았던 면과 좋았던 시절만을 기억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 며칠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갑작스럽게 일어난 불운한 사고로 뛰어난 정치인 하나를 잃어버린 것처럼. 그게 고인의 뜻이었을까? 그랬다면 왜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쏟아지는 비난을 시끄러운 잡음으로 취급하면서, 소나기가 얼른 지나기를 바라면서, 기나긴 법정 다툼에 수십명의 변호사를 대신 내세우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노련하게 직무에 몰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세상에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남은 ‘모두’의 선택지가 될 수도 없다.
피해자를 힐난할 수도 있다. 마치 피해 호소가 살인 행위라도 된 것처럼 거꾸로 겁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고인의 뜻이었을까? 그랬다면 왜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힘이 미치는 범위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피해자를 먼저 세상에서 몰아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세상에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남은 ‘모두’의 선택지가 될 수도 없다.
이 사건이 ‘공소권 없음’과 함께 종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죽음이 겨우 ‘공소권 없음’을 얻어내기 위해 치러야 했던 법률적 가격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뿐인 목숨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사람은 없다. 진실은 더 단순하지 않을까? 한때 명예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만큼, 그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부끄러웠을 것 같다. 살아온 방식처럼 스스로에게 엄격할 수는 없었지만, 살아온 방식을 입으로 부정할 사람은 못 되었기에 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먼저 떠났다. 남은 일은 ‘모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가 진상 규명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극단적인 도피처를 택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떠난 자의 뜻을 헤아리려 애쓰고 있다. 이 죽음의 의미를 “낯뜨거운 일은 부디 들쑤시지 말고 무덤 속에 함께 묻어달라”는 애원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잘 생각해 보라. 삶과 죽음을 존중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만 한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삶만을 간추려 기릴 수는 없다. 한 사람에게 죽음보다 무거웠던 짐을 함께 나눠 든다고 가벼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짐을 고통스럽게 나눠 들자고 제안한다. 그의 삶과 죽음 사이에 아직 바뀌지 않은 것들과 앞으로 바뀔 것들의 경계를 긋자. 그가 생전에 용기 내지 못했던 사과와 위로의 말을 피해자에게 대신 건네자. 이 비극을 목숨 하나의 단절이 아닌 연속된 사회적 장면으로 이어나가자. 그가 명예를 지키는 최후를 선택했다는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자. 대신 이 죽음 이후의 사회를 전례가 없이 명예로운 방식으로 바꿔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