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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일본 침몰을 막으려면 / 야마구치 지로

등록 2020-07-19 17:04수정 2020-07-20 02:40

야마구치 지로 ㅣ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1973년 고마쓰 사쿄라는 공상과학(SF) 작가가 쓴 소설 <일본 침몰>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제1차 석유위기가 닥쳐 고도경제성장이 갑자기 멈췄던 시대적 상황에서 종말론이 유행했고, 지각변동으로 일본열도가 지각판 아래로 가라앉는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크게 흥미를 느꼈다. 고마쓰는 소년 시절 전쟁을 체험했고 국가와 자신의 관계를 묻는 것을 평생의 주제로 삼았다. 이 작품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없어졌을 때 일본인은 어떻게 살아갈까를 상상하는 정치적 소설이기도 하다.

최근 다른 책을 읽던 중 <일본 침몰>이 소개되어 있어서 나도 오랜만에 이 소설을 떠올렸다. 최근 10년간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 거의 해마다 계속되는 대규모 태풍과 홍수, 그리고 이번에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 일본은 여러 가지 충격을 계속 받고 있고 희생자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일본열도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기대어 왔던 물적 기반과 사회적 제도가 침몰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를 느낀다. 이런 감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애니메이션화된 <일본 침몰 2020>이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자연재해와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한 희생과 피해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과제이며 이 점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일본의 경우에는 정치인이 인구 대비 코로나19 감염자가 극히 적다고 자만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를 ‘일본 모델’이라고 불렀다. 감염자 수가 적은 것은 코로나19 검사 자체가 억제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인구 대비 사망자 수는 일본이 한국, 중국, 대만, 베트남보다 많다.

7월 들어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도쿄에서는 매일 200명 이상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밤거리’(유흥가)에서 검사를 늘리고 있어서 감염자 발견이 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보육원이나 병원에서 코로나19 감염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도쿄도의 대응은 둔하다. 정부는 감염 대책보다 경제활동 확대를 우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7월22일부터 여행자 숙박비와 식사비를 보조하는 ‘고투(GoTo) 트래블 캠페인’을 예정대로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한 예산이 1조7천억엔이다. 일본 인구 3분의 1이 사는 수도권에서 감염이 급증하고 있고, 규슈와 기후현에서는 집중호우로 유례가 없는 피해를 당하고 있는 와중에 한가하게 여행을 갈 마음이 생길까. 관광지가 있는 지방자치단체 지사와 시장도 이 캠페인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코로나19 대책을 담당하는 장관은 감염 확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스꽝스럽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정부가 한가롭게 여행 권장 정책을 진행하는 중에 의료 현장은 붕괴 직전이다. 코로나19 감염 환자를 받은 병원에서는 다른 진료를 하는 것이 제약돼 수입이 감소하고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는 업무 과중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도쿄여자의대병원은 직원들에게 여름 보너스를 지급하지 못하게 돼서, 간호사 400명이 퇴직을 원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다. 또한 도쿄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시설 개조 비용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으겠다고 발표했다. 5월 말 의료 종사자에게 감사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항공자위대 곡예비행대가 도쿄 상공을 날았다. 감사가 그걸로 끝난다면, 정부의 위선이다.

국가는 어리석은 위정자에 의해 침몰당할 수도 있다. 일본은 바로 그 고빗사위에 있다. 일본에서는 중의원 의원 임기 만료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아베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지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올가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도 정치인도 일본 침몰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지하게 논의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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