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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부동산시장에 떠도는 두 가지 격언 / 홍장표

등록 2020-07-20 17:41수정 2020-07-21 09:43

홍장표 ㅣ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몇년간 부동산시장을 보면, 마치 증권시장의 주가를 보는 듯하다.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오르고, 변동성도 매우 크다. 집값이 오르면 정부 대책이 나온다. 잠시 진정되다가, 다시 가격이 오른다. 대책이 발표된 후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규제가 없는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수용성(수원·용인·성남), 대전, 청주까지 집값이 오른다. 전형적인 투기 장세다. 어느새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택 시가 총액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부동산 투자 기법을 가르치는 고액 강좌, 아파트 투어가 성황이다. 부동산 투자 광풍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일각에서는 집값 급등은 공급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풀어서 공급량을 더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라고도 한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그 말이 맞다. 그런데 투기 열풍이 부는 시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시장 참가자들이 미래 가격 상승으로 자본이득을 얻는다고 기대한다면, 공급이 늘어나도 투기 수요 급증으로 가격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공급을 늘려도 집값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투기의 대상이 늘어날 뿐이다.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최근까지도 늘어났지만, 집값은 오히려 올랐다. 서울에서도 집값이 많이 오른 곳은 성동구, 광진구처럼 아파트 분양 물량이 많았던 곳이다. 얼마 전에는 재개발 재건축이 호재로 작용해 강남, 마용성의 아파트값이 급등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투기 열풍이 거센 상황에서는 공급 물량을 늘려도 집값 안정을 장담하기 어렵다.

주식이나 부동산값은 단기적으로는 심리에 좌우된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제아무리 돈이 풀려도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를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가격이 움직인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강할 때는 대출을 규제해도, 공급을 늘려도, 집값이 안정되기 어렵다. 이미 있는 돈의 일부만 움직여도 집값은 뛰기 때문이다.

집은 삶의 터전이지,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잠재우고, 공급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일이 바로 정부의 몫이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결연했다. 그렇지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투기 수요의 근원인 투기 이익을 제거하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종합부동산세를 올린 9·13 대책이 시장의 예상보다 약했다. 종부세 인상폭이 부동산 투기로 얻는 초과 이익을 없애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정책 혼선도 있었다. 2017년 말 주택임대사업 등록 활성화 대책은 전월세 사는 서민들의 주거를 안정시키려는 착한 의도에서 시작했다. 그렇지만 다주택자들이 투기로 가는 꽃길을 터주는 격이 되었고, 집 사재기와 매물 잠김 현상을 낳았다.

여러번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의 투기 열풍은 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30대 청년들도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산다는 불안과 공포 심리 때문에 집 사기에 뛰어들기에 이르렀다. 정책 신뢰도도 크게 떨어졌고, 집값을 잡을 실력이 있는지조차 의심받았다. 이젠 정부도 이전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더 이상의 우회로는 없다.

얼마 전 발표된 7·10 대책은 초과 이익을 제거하고, 투기 불로소득은 환수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시세차익을 노린 다주택자와 법인 투자를 전방위로 규제하는 정공법을 채택하였다. 취득, 보유, 양도 모든 단계에 걸친 세금 중과는 역대급이다. 부동산 전문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전례 없는 수준이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아파트는 이제 끝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대책은 외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한국이 7·10 대책으로 가격 안정에 성공한다면, 집값이 오르고 있는 다른 국가에서도 뒤따를 것으로 보았다.

물론 7·10 대책은 실수요자 보호 원칙에 충실한 후속 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양질의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여 실수요자의 공급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정부가 보호하는 실수요자는 1주택자를 넘어 실거주자임을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동산시장에서 회자되는 두가지 격언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시장을 이기는 정책 없다”이다. 그동안 대책을 보면 그렇다. 시장을 이기기에 정책이 많이 부족했다. 다른 하나의 격언은 “시장은 정부에 맞서지 말라”이다. 7·10 대책이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는 집 아니면 다 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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