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는 피해자 없이도, 혹은 신과 나만 있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의 평등한 존엄을 전제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속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사과’다. 단독적 행위인 속죄와 달리 관계적 행위인 사과를 통해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단지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박권일 ㅣ 사회비평가
소위 ‘86세대’ 및 그 이전 세대는 박원순의 죽음을 나라 잃은 양 비통해했다. 모든 증거와 정황이 수년간 이어진 성추행 범죄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그들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을 일삼으며 박원순을 ‘추모’했다. 철저한 ‘가해자 중심주의’였다. ‘포스트 86세대’들, 20~40대는 이들과 달랐다. 상당수는 피해자의 편에 섰거나 적어도 2차 가해에 나서지는 않았다. 성인지 감수성의 세대 격차는 극명했다.
평소 교회가 “페미니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온 강남순 교수는 박원순 성추행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데리다와 칸트를 동원해 “순결주의 테러리즘”이란 딱지를 붙였다.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꼽혀온 김동춘 교수는 “박원순 같은 사람은 당장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며 “이 사람이 죽음으로써 우리 국가와 사회가 입은 피해, 사회적 약자들이 앞으로 입을 피해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100조원”도 황당하지만 더 어이없는 건 “사회적 약자가 입을 피해” 운운하는 대목이다. 김동춘에게 성추행 피해자는 아예 ‘사회적 약자’로 셈해지지도 않은 것이다.
반면 ‘포스트 86세대’는 박 시장의 자살이 안타깝긴 하나, 그가 저지른 성추행을 ‘공소권 없음’으로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보기에 박원순의 업적을 기리는 일 이상으로 중요한 건 한 여성을 고통에 빠트린 권력형 성범죄를 밝혀내고, 피해자의 삶을 회복하도록 돕고, 재발을 막는 일이다. 나는 그 이유가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와 연관된 게 아닐까 한다. 때로 과격하고 종종 순수하다는 점에서 모든 세대 청년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포스트 86세대가 86세대와 크게 다른 점은,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이라는 관념을 더 깊이 내면화했다는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는 말이 될 테다.
86세대와 그 이전 세대 또한 개인의 자유, 인권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치의 일상적 실천에는 극도로 무능했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같은 가치는 주변적 상식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그들 세대의 ‘우세종’이 될 수는 없었다. 86세대는 뜨거운 진정성의 세대였지만, 삶과 이념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모습을 보였다. 포스트 86세대는 미지근했지만 그만큼 냉정했고, 삶과 이념이 지나치게 괴리되는 것에 본능적 거부감을 가졌다. 삶을 이념 쪽으로 끌어당기든 이념을 삶 쪽으로 끌어당기든, 어쨌든 그들은 각자의 깜냥대로 일관된 삶을 추구하려 했다. 고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이상으로 이들에게 중요한 일은 자신과 타인의 소소한 삶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이었다.
많은 86세대가 이렇게 말한다. “박원순은 최고로 무거운 형벌을 이미 받았다. 죽음으로 속죄한 것이다.” 우선 명확히 해두자. 사건규명과 조사과정 없는 자살은 형벌일 수 없다. ‘속죄’의 ‘속(贖)’은 조개 ‘패(貝)’와 팔 ‘매(賣)’의 결합이다. ‘속’은 노예제 사회에서 비롯한 말로, 본래 ‘자유를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의미했다. 속죄는 피해자 없이도, 혹은 신과 나만 있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의 평등한 존엄을 전제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속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사과’다. 단독적 행위인 속죄와 달리 관계적 행위인 사과를 통해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단지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는 박원순 자살 이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박 시장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원순은 사과는커녕 성추행에 대한 일절의 해명 없이 생을 마감했다. 그런 죽음을 옹호하거나 공적으로 애도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불가능하다.
어떤 이는 조국 사태나 박원순 자살을 두고 “진보의 몰락”이라 말한다. 미안하지만 몰락한 건 진보가 아니라 그저 당신들이다. 그리고 당신들을 몰락시킨 건 독재정권도 ‘수구꼴통’도 아닌,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이다. 이제 86세대의 명칭은 바뀔 때가 됐다. 끝없는 허기에 이끌려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무리지어 타인을 공격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이미 죽은 줄 모른다는 점에서 이들을 부를 새 이름으로 ‘좀비’가 마침맞다.
추신: 이 모든 이야기는 세대 전체가 아니라 과대 대표되어온 세대 엘리트와 추종자들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