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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섬을 탈출하는 기록 ‘도도기’ / 이나연

등록 2020-07-26 17:39수정 2020-07-26 21:19

이나연 ㅣ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일제강점기 제주에선 일본으로의 엑소더스(대이주)가 있었다. <제주도의 지질>에 포함된 마쓰다 이치지의 논문에 따르면 1934년 25만여명의 도민 중 5만명 이상이 허가를 받아 일본으로 떠났다. 12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출가를 희망했지만 대부분은 허가를 받지 못했다. 제주도의 가구 중 64%가 돈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고 기록된다. 1907년에는 고기잡이를 위해, 1914년부터 22년 사이는 방적공장 등에 취직하기 위해, 섬사람은 또 다른 섬나라인 일본으로 떠났다. 1933년대 조선의 흉작과 일본 경제의 활황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제주인이 일본으로 가는 이유가 됐다.

100여년이 넘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다. 대이주의 역사는 새로운 방식의 국제관계가 형성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3세대, 혹은 4세대 재일교포가 증조부의 고향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겠다. 연이 닿는 친척이 남아 있기도 해서 후손의 의지만 있다면 일본과 제주 간의 잦은 왕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대가 지날수록 한국어 능력이 줄어들거나, 모국과의 끈이 점차 가늘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모국에 대한 관심이 세대가 넘어감에 비례해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다.

현우민 감독은 3세대 재일한국인이다. 작가의 조부모는 1940년대에 일본으로 이주했다. 제주에서 살아본 적 없는 영화감독인 손자가 제주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보려는 시도가 새삼스럽진 않다. 아마 살아보지 않은 모국에 대한 호기심은 살아보지 않았기에 더 강해질 수도 있다. 막연한 상상을 작품으로 구체화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감독은 선조 때와는 말도 문화적 경험도 완전히 달라진 상태로 일본에서 제주로 떠나는 모험을 시작했다. 선조 때와는 반대되는 개념의 탈출이 된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고향을 찾은 재일한국인 3세의 이야기를 담은 2015년작 <오하마나>는 현우민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재를 사는 이들이 할머니라는 타자를 통해 과거를 다시 느껴보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제 확장된 개념으로 ‘섬을 떠나는 탈출’ 자체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한다. 2018년부터 시작된 현우민의 새 프로젝트는 <도도기>(逃島記)다. 홍콩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2017년의 펑차우섬에 방문한 경험이 작업에 영감을 줬다. <도도기>는 홍콩에 있는 ‘도항’(逃港·항구를 떠나다)이라는 말을 ‘도도’(逃島, 섬을 떠나다)로 바꾸고, 기록의 기(記)를 붙여 ‘섬을 떠나는 기록’이라는 뜻을 담아 작가가 새로 조합해 만든 단어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 많은 중국인이 자유와 안전을 찾아 홍콩에 정착했다. 이들의 후손들이 이제 2019년과 2020년을 관통하고 있는 홍콩 시위의 주체가 됐다. 선조들이 도망쳐서 도착한 땅에 정착한 이들은, 터전을 지키기 위해 탈출하는 대신 싸움을 택했다.

<도도기>는 탈출을 다룬다는 점에서 현우민이 제주도에서 찍은 이전 작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제 펑차우와 제주 두 섬은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 젊은이들의 도피처가 됐다. 과거의 탈출과 형태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도망친다. <도도기>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항해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대사도 나온다. “네가 지금 있는 곳은 누군가 도망쳤던 곳이다.” 작가의 작품은 8월 셋째주 넷째주 제주의 전시공간 새탕라움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에 맞춰 제주에서 <도도기> 신작을 제작하려 했던 계획은 코로나19로 무산됐다. 2019년의 제주 촬영도 홍콩의 급변하는 정세를 따라가느라 이뤄지지 못했다. 항해는 성공하지 못했다. 팬데믹의 상황에서 탈출의 새로운 의미가 <도도기>에 더해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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