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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 / 슬라보이 지제크

등록 2020-07-26 17:39수정 2020-07-26 19:30

슬라보이 지제크 ㅣ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코로나 위기는 빈곤의 문제와 긴밀하게 엮여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 위기는 오히려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 공공 보건의료를 정비하고 강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레히트 희곡의 대사처럼 ‘간단한 일이 하기 어려운 법’. 자본주의 체계는 간단히 풀 수 있는 문제도 쉽게 풀지 못하게 만든다.

코로나가 재확산하면서 다시 여러 조처가 취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완전한 봉쇄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어떤 단서가 달려 있는 듯하다. 사람들도 “나는 다시 봉쇄 조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나는 원래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봉쇄와 거리두기가 (베냐민의 ‘정지상태의 변증법’을 뒤집은) ‘변증법의 정지상태’이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우리의 삶은 거리두기와 격리 속에서 정지상태를 맞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그때 급진적 변화가 진행되었다. 봉쇄를 거부하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일이다.

나는 봉쇄에 대한 격렬한 저항감을 보면서 ‘정상성은 일종의 정신증’이라는 (라캉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가 모두 지금 다시 정상성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은 바이러스의 실재를 정신증적으로 폐제하고자 하는 시도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독립기념일 연설을 보자. 그는 코로나 위기의 위험성을 뻔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코로나가 아니라 “좌파 폭도”라고 주장한다. 정상성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실은 변화에 대한 거부이자 집단적 광기나 마찬가지다.

(헤겔에 따르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역사를 교훈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시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국제연맹을 결성했다. 이런 시도는 2차 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결국 새로운 재난은 발생한다. 앞날을 미리 볼 수 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이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바로 그 노력 때문에 그는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예언을 실현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이들은 스탈린주의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결국 스탈린주의 체제로 넘어갔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이 스탈린주의를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들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위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 코로나 위기와 싸우기 위해 하고 있는 조처들이,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또 다른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지난 몇주 동안, 우리는 전지구적인 자본주의가 코로나 위기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이 번 돈이라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을 위해 재투자해야 한다. 우리의 만족은 끊임없이 유예되고, 이것이 자본을 위한 희생이라는 사실은 은폐된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가 도래하면서, 자본주의가 그동안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해왔음이 폭로되었다. 자본주의는 지금 당장 자본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노동자들에게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도록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코로나 위기가 일시적 위기이기만 하다면 봉쇄와 거리두기도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문제가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처음부터 새롭게 발명하는 어려운 일을 수행해야 한다. 나는 코로나 위기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사회의 의미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사고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를 바꾸기 위해 너무 성급했는지 모른다. 세계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야 할 때가 왔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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