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관련 금융기관의 신용을 믿고 구매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도 몰랐고, 피해자라고 한다. 수수료는 따박따박 챙기면서 투자자의 자기 책임을 운운하는 건 몰염치하다. 금융시장의 상품 판매가 이러니 개미들의 직접 투자가 전세계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시중의 유동자금이 자본시장을 외면하고 부동산으로 몰리는 것이다.
김기식 ㅣ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전 금융감독원장
희대의 금융사기 사건. 과거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한 동양증권 사태나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펀드(DLF) 등 파생상품 사건은 불완전판매가 이슈였다면, 최근 불거진 라임, 옵티머스 사건은 명백한 사기 사건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더구나 그 과정이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투자 부실을 숨기고, 허위로 투자자산을 속이며, 폰지사기를 했는데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회사 노릇을 한 국내 굴지의 금융기관들은 다 몰랐다고 한다. 금융당국은 환매 중단이 되고서야 부랴부랴 사후 점검에 들어갔다.
금융은 신뢰가 기본이다. 라임이나 옵티머스의 사모펀드 상품 구매자 중 그것이 누구의 상품인지 알았던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관련 금융기관의 신용을 믿고 구매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도 몰랐고, 피해자라고 한다. 전문 금융기관도 모르는 일을 일반 국민이 어찌 알 수 있나. 책임지고 팔든지 책임질 수 없으면 팔지 말아야 하는 건 상품 판매의 기본이다. 수수료는 따박따박 챙기면서 투자자의 자기 책임을 운운하는 건 몰염치하다. 금융시장의 상품 판매가 이러니 개미들의 직접 투자가 전세계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시중의 유동자금이 자본시장을 외면하고 부동산으로 몰리는 것이다.
한건 정도면 불법을 해서라도 일확천금하려는 범죄자의 문제지만 연이어 발생하고, 전수조사를 할 지경이면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다. 최근 사모펀드 사건은 2015년 자산운용업을 육성하겠다며 이루어진 사모펀드 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규제 완화가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진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논외로 하더라도 1999년 카드 규제 완화는 2003년 카드 사태를 초래했고, 2006년 저축은행 규제 완화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대규모 부실로 이어져, 무려 26조원의 공적자금 투입과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는 대가를 지불했다. 이명박 정부가 국제적인 신용평가회사를 육성하겠다며 추진한 신용정보법 전면개정은 2014년 1억건이 넘는 대규모 신용정보 유출 사건으로 이어져 결국 신용정보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다시 전면개정하게 만들었다.
섣부른 규제 완화가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지고, 다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개혁과 규제 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자본시장, 특히 파생상품의 성격상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 고령층 등 투자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에 대한 판매는 제한되어야 한다. 일부 규제를 완화하면 그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는 범죄의 유혹을 차단하기 위해 감독행정이 강화되어야 한다. 사전적 규제를 완화하려면 사후적 배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회사의 실적과 연계되는 보상 시스템, 느슨한 내부 통제장치, 사고가 났을 때 경영자는 책임지지 않는 구조는 연이은 금융사고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다. 아무리 감독행정을 강화해도 수많은 금융상품의 판매를 사전적으로는커녕 사후적으로도 대처하기 어렵다. 금융회사와 금융지주사가 스스로 통제를 해야 한다. 회사가 자율 규제의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만들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에게 묻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규제 완화의 허점을 메울 수 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 제정되었다. 포괄적인 관리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통해 적정성, 적합성, 설명의무 요건만이 아니라 관련 금융기관에 확인 의무와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그리고 입증책임 전환과 징벌적 손해 배상을 통해 사후 배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 진흥의 목적으로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 하고, 감독을 등한시해 대형 금융사고가 계속 발생하지 않도록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와 감독기구를 분리해야 한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감독하는 건전성 감독기구와 영업행위 및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기구를 분리해 이른바 쌍봉형으로 재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기간 없이 정부가 출범되는 상황을 고려해 정부조직 개편을 최소화하기로 함에 따라 감독체계의 개편을 추진조차 못 했다. 그러나 최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금융감독기구 분리, 독립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일부 통합당 의원은 법안을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정부로 미룰 것이 아니라 이참에 여야 합의로 제도와 시스템을 개편할 것을 기대한다. 규제 완화와 대형 금융사고가 악순환되는 고리를 이제 끊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