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영 l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올 초 중국 현지조사를 떠난다고 부산을 떨다가 코로나 바람에 계획을 접어야 했다. 여름에 갈 수 있다는 순진한 확신이 올해는 틀렸다는 체념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사이 미디어를 통해 중국을 접하다 보니 ‘혐중’을 우려해온 나조차 생각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중국이 중국했네”까지는 아니어도, “아… 또… 왜…”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중국 정부는 감염병 위험을 알린 의사 리원량의 입을 틀어막고, 그의 죽음에 애도할 시간을 주기는커녕 대대적인 인터넷 단속에 나섰다. 코로나 초기 늑장 대처에 대한 사과 없이 자국의 감염병 대응을 자화자찬하느라 분주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신장 위구르족 탄압 소식은 암울했고, 홍콩 보안법을 강행처리한 것은 충격이었다. 자국민이 절실히 외쳐온 존엄의 요구를 단박에 짓밟고 내정간섭 말라는 훈계만 반복하는 오만을 더는 참기 어려웠다. 타국에서 오랜 현장 경험을 쌓아온 인류학자는 그래프와 숫자로만 그 사회를 해석하지 않는다. 얼굴과 얼굴이 맞닿는 경험이다.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직업이다. 하늘길이 끊긴 사이 내 애정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던 중에 베이징에 사는 친구 리핑(가명)과 연락이 닿았다. 소셜미디어인 위챗 계정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서 중국 지인들과 연결이 끊겨 애를 먹던 참이었다. 코로나 이후 안부가 궁금해 연락했는데 응답이 없자 불안한 마음에 수소문했단다. 내가 무사한 것에 안도하면서 접속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비상 연락 방법을 자세히 적어 보내주었다.
순간 감정이 동요하면서 지난 십수년 동안 리핑 가족과 맺어온 인연을 떠올렸다. 칭화대 교정에서 리핑을 처음 만난 게 2004년이다. 개혁개방 이후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변화를 논문 주제로 만지작거리던 즈음 제 일가친척 모두가 실업자라며 동북의 공업도시 푸순으로 나를 안내했다.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사회주의 노동자’가 시장경제의 낙오자로 매도되던 시절, 가족들은 노점상, 건설일용직, 파출부로 하루하루 버티면서도 내게 아낌없는 환대를 베풀었다. 푸순시 소재 연구기관의 직원들은 외국인인 내가 이상한 취재라도 할까 싶어 일거수일투족을 캐물었지만, 팔순이 다 된 리핑의 할머니는 내가 행여 강도라도 당할까 걱정이 앞서 관공서로, 박물관으로, 노천 탄광으로 힘든 동행을 자처했다. 몇년 뒤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급격히 야윈 리핑의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식에서 손수 쓴 편지를 온 힘을 다해 읽었다. 명절 때 또 보자 하셨지만, 마지막 만남이란 걸 예감한 듯 피로연 때 손을 꼭 잡아주셨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떠났고, 리핑은 모두의 소원대로 수도 베이징에 정착했다. 코로나 사태 전 베이징에 들렀을 때 손주를 돌보러 온 리핑의 어머니는 오래전 동북에서처럼 만두를 빚어주셨다.
현지조사를 하면서 내가 만나온 평범한 중국인들은 ‘중국’을 ‘중국 국가’, ‘중국 정부’와 곧바로 등치시키는 위험한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내가 바라는 삶의 경관이 배타적 주권을 내세우면서 국가 간의 힘겨루기에 매몰된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서로에게,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공생을 약속하는 세계였음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근대성의 폭력이 누적된 공간에서 버텨오는 동안 ‘좋은 삶’의 기준이 얼마나 협소해졌는가도, 그럼에도 삶의 취약성을 딛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평범한 을들이 얼마나 많은가도 환기해준다. 무엇보다 섣부른 경계와 비난이 관심과 비판을 압도해선 안 된다는 자명한 원칙을 일깨운다.
코로나 사태로 연구도 만남도 기약하기 어려운 지금에야 바다 건너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쌓인다. ‘닥치고 혐오’가 일반화된 세상에서 안부를 물을 친구들이 있어, 이들을 통해 내 시선의 편협함을 돌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전염병에서 기후변화까지 갈수록 빈번해질 재난으로 서로 간의 물리적 만남이 힘들어질 때, 그럼에도 개별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성원으로 중지를 모아야 할 일은 쌓여만 갈 때 어떤 연결을 궁구해야 할지 선뜻 답을 찾기 어렵다. 경험이 아닌 지식만으로, 접촉이 아닌 접속만으로 우리는 서로의 삶에 가닿을 수 있을까? 그러자면 우리의 지식과 접속에는 어떤 지혜가 새롭게 담겨야 할까? 코로나를 ‘빌미’로 온라인 수업이 전면 확대되면서 다급한 질문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