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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노동자’ 없는 플랫폼 노동 / 김만권

등록 2020-08-02 17:50수정 2020-08-03 02:41

김만권 ㅣ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2015년 <이코노미스트>가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신조어를 내놓았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이 용어는 스마트폰이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고, 더하여 일상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알렸다.

이런 스마트폰이 만든 급격한 변화가 놀랍게도 자본주의의 본질까지 바꿔 놓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스마트폰에 기반을 둔 플랫폼 자본의 등장이다. 전통적으로 ‘자본’이란 말엔 ‘생산수단의 소유’란 의미가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자본가와 노동자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생산수단의 유무다. 노동자는 노동력만을 갖고 있기에 때로 억압을 견뎌야 하고,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기에 부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자본에게 생산수단은 권력의 원천이나 다름이 없다.

한데 플랫폼 자본은 이런 전통적 발상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제일 큰 택시회사인 우버는 단 한 대의 차량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세계 제일의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 역시 호텔은커녕 단 한 채의 부동산조차 없다. 세계 최대 미디어기업인 페이스북엔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이 생산수단을 아예 소유하지 않거나, 이를 활용해 노동하는 이들을 고용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는 자본의 등장은 특히 ‘공유경제’로 불리는 분야에서 돋보인다. 택시나 숙박업 말고도 배달, 청소, 온라인 단순노동 등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배달하는 이들이 직접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단순노동이라도 하려면 컴퓨터를 직접 소유해야 한다. 이런 생산수단의 소유는 곧장 그 수단을 유지·관리하는 비용으로 이어진다. 플랫폼 등장 이전엔 자본이 지던 비용이 노동하는 이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대신 플랫폼 자본은 온라인에서 노동중개인 역할을 하며 최대 20%가량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거기에 더해 새로운 자본은 플랫폼 노동 종사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유휴자산을 나눠 쓰는 일을 ‘부업’으로 하는, 저와 계약을 맺은 ‘독립사업자’입니다.” 새로운 자본에게 ‘부업’과 ‘독립사업자’는 마법의 단어다. 이를 통해 4대 보험으로 상징되는, 기업이 고용자들에게 져야 할 보호의 의무에서 간편하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글을 쓰는 동안 플랫폼 ‘노동자’ 대신 ‘노동하는 이들’, ‘종사자들’이란 표현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일터에서는 노동자와 똑같은 일을 하지만 법적으로는 ‘독립사업자’다.

‘유휴자산’, ‘부업’, ‘독립사업자’란 마법의 표현은 단지 노동에 대한 전통적 보호망만 뺏는 것이 아니다. 이런 표현은 플랫폼 종사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노동자’의 지위를 숨겨서 이들이 노동조합 등을 만들어 행사할 수 있는 노동3권을 교묘히 박탈한다. 이처럼 ‘공유경제’가 채택한 용어들은 종사자들이 연대의 감성과 실천을 공유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한다. 대신 공유경제의 플랫폼에선 “‘건당’, ‘분당’, ‘시간당’의 짧은 시간 노동력이 필요한 이들”과 “‘별점의 감시 아래’ ‘경쟁하며’ ‘상시 대기’하고 있는 노동력”이란, 수요와 공급의 만남만이 공유되고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플랫폼 노동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요국의 경우 생산가능인구의 10%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이들의 유동적인 노동 지위를 고려해볼 때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경우도 추정치만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불안정한 비임금노동자가 213만명 늘어나 613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플랫폼 종사자들은 이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수익은 직종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연간 기준 800만~1400만원대였다.

국내외 통계를 보면 적게는 절반, 많게는 75%에 이르는 플랫폼 종사자들이 자신의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노동중개인에겐 부업이란 명목의 공유경제가, 다수의 종사자에겐 보호 없이 고립된 생계 그 자체인 것이다. 다행히 라이더유니온을 비롯해 소수의 플랫폼 종사자들이 노동3권을 찾기 위한 법적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을 공식적으로 ‘노동자’로 부를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연대도 곁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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