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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누구를 위한 그린벨트인가

등록 2020-08-02 17:56수정 2020-08-03 09:31

이상한 건 그린벨트의 ‘선택적 수호론’이다. 이 수호론엔 엄격한 위계가 있다. 강남의 그린벨트는 결사적으로 지켜야 할 것인 반면, 같은 서울에서도 강북의 그린벨트는 좀 훼손해도 괜찮고, 서울 외의 수도권 그린벨트는 마구 훼손해도 괜찮고, 비수도권은 아예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게 이 위계의 핵심이다.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부가 서울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잠재우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로 강남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띄운 건 7월 중순께였다. 그린벨트가 서초·강남구에 많다는 보도도 나오고 해서 그렇게 가려나 보다 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언론도 반대로 기울자, 문재인 대통령은 7월20일 “개발제한구역은 미래세대를 위해 계속 보존해야 한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국가 소유 태릉골프장 부지 활용을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는데, 태릉골프장 역시 그린벨트였기 때문이다. 왜 강남이 아닌 태릉으로 바뀌었을까? “강북 주택 공급이란 점에서 서울시가 추구했던 강남·북 균형발전 기조에도 들어맞는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게 왜 균형발전이란 건지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린벨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건 국민 다수의 믿음이다. 그린벨트 논란이 일던 시점에서 이루어진 리얼미터 조사에서 그린벨트 해제 반대(60.4%)가 찬성(26.5%)의 두 배가 넘었다. 그렇다. 그린벨트는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린벨트의 ‘선택적 수호론’이다. 이 수호론엔 엄격한 위계가 있다. 강남의 그린벨트는 결사적으로 지켜야 할 것인 반면, 같은 서울에서도 강북의 그린벨트는 좀 훼손해도 괜찮고, 서울 외의 수도권 그린벨트는 마구 훼손해도 괜찮고, 비수도권은 아예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게 이 위계의 핵심이다.

이런 위계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까? 전체 면적의 4분의 3에 이르는 지역을 그린벨트로 꽁꽁 묶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카운티의 사례를 보자. 부자들이 많이 사는 몬터레이는 강력한 그린벨트 정책 덕분에 야생 칠면조, 산돼지, 사슴들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이런 지역들이 미국엔 많다. 부자들은 환호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높은 집세 때문에 죽어난다. 어쩌겠는가. 떠날 수밖에. 그래서 가난한 흑인 인구가 급감한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강력한 그린벨트 정책은 ‘흑인 퇴치용’으로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에 비해선 덜할지 몰라도, 한국에서도 그린벨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1960년 244만명(전체 인구의 10%)이던 서울 인구는 1970년 543만명(전체 인구의 18%)으로 급증했으며, 증가 추세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1971년 7월30일 건설부 고시 제447호로 태어난 그린벨트의 목적은 서울 변두리에 즐비했던 판자촌을 없애는 동시에 판자촌이 서울 인근 도시들로 뻗어 나가는 것을 막음으로써 수도권 인구 유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한동안 성공을 거둬 그린벨트는 ‘박정희의 최대 걸작’이라는 평가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지만, 그 이면엔 잔인한 점도 있었다.

당시 서울로 밀려들던 지방 사람들은 서울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고향에선 먹고살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던 판자촌은 강제철거 대상이었다. 철거민들을 쓰레기 내버리듯 서울 밖의 지역으로 내팽개치는 일은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 덕분에 서울은 ‘천박’할망정 겉보기엔 점점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 갔다. 어디 그뿐인가. 역대 정권들은 주거 빈민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 분산 정책을 통해 이들이 집단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그 덕분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통해 무주택자들의 지갑을 터는 ‘부동산 약탈 체제’도 평화롭게 지속될 수 있었다.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도 일자리의 서울 집중은 달라진 게 전혀 없다. 화를 내는 지방민들이 별로 없다는 게 이상하지만, 서울시민들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사회·문화·교육적 자원과 특혜가 강남에 집중되는데도 강남에 진입하기 위한 투쟁만 벌일 뿐 “그래도 되느냐”고 화를 내질 않으니 말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의 진앙지가 강남이라면, 강남을 덜 ‘살기 좋은 천국’으로 만드는 게 하나의 해법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볼 때도 되지 않았나?

살기 좋고 아름다운 강남의 그린벨트를 지키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사명이요 다수 국민의 희망이다. “나도 언젠간, 정 안 되면 내 자식이라도, 강남에 사는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무주택자와 이른바 ‘집 아닌 집’에 사는 주거빈곤층에게 그린벨트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법은 없다. ‘아름다운 강남’과 부모를 잘 둔 미래세대를 위해 잘하는 일이라고 박수를 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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