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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시대를 이기는 정당은 없다 / 이철희

등록 2020-08-03 16:30수정 2020-08-04 13:39

이철희 ㅣ 지식디자인연구소장

늘 이기는 정당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승패는 돌고 도는 것이고, 또 그래야 공평하다.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큰 정당들도 예외 없이 바닥을 경험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정당 간 경쟁에 갇혀, 익숙함에 길들여져 시대 감수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이기는 정당은 없다. 그 정당들이 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낡은 것들을 털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내는 아픔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공짜 부활은 없다.

1945년 7월5일, 영국 총선이 치러졌다. 2차대전 승리가 5월이었으니 처칠 총리의 인기는 높아 지지율이 무려 83%에 달했다. 그런데 전쟁영웅 처칠을 앞세운 선거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에 허망하게 패배했다. 노동당은 사상 처음으로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얻었다. 전체 640석 중 노동당이 393석, 보수당이 197석을 얻었다. 이전 선거에 비해 노동당은 무려 239석을 늘렸고, 보수당은 189석을 잃었다. 영국 국민이 일상의 삶을 이유로 나라를 구한 처칠과 보수당을 ‘팽’시키고 노동당을 택한 것이었다.

1979년 5월3일 치러진 선거에서 대처의 보수당은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62석을 늘려 50석을 잃은 노동당을 제쳤다. 그로부터 18년 뒤 블레어의 노동당에 패할 때까지 장기 집권했다. 미국의 공화당은 대공황을 초래한 탓으로 1932년 대선에서 패한 이후 계속 부진을 면치 못했다. 공화당이 이긴 것은 아이젠하워가 출마한 1952년 대선이었다. 20년 만이었다.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압승한 뒤 소수파로 전락해 힘을 못 쓰던 민주당이 다시 승리한 것은 1992년 대선에서였다.

영국의 보수당이 1945년의 기록적 패배를 딛고 6년 뒤의 선거에서 다시 승리한 이유나, 노동당이 대침체에서 벗어나 1997년 선거에서 이긴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의 공화당이 1952년 오랜만에 집권에 성공한 이유나 1992년 민주당이 12년 만에 승리한 이유도 비슷하다. 그들 모두 애써 외면하거나 놓쳤던 시대의 주된 흐름, 시대정신이라고 해도 좋을 국민적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시대 흐름을 경쟁 정당이 구현하고 있는 구도다. 상대당의 주장이니 생리적으로 싫고, 받아들이자니 자존심도 상한다. 그러나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패배했을 때 승리한 정당의 정책, 예컨대 복지체제, 신자유주의, 뉴딜 개혁 등을 받아들여 찬반 구도를 우열 구도로 바꿈으로써 재기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의 보수세력이 겪고 있는 만성적 패배도 간단하다. 시대 흐름에 뒤처졌기 때문이다. 겨울 코트를 두겹 세겹 껴입는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으랴. 영국 총리를 지낸 보수당의 캐머런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해야만 하고, 그것이 보수의 본질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래통합당은 시대 흐름에 조응하는 변화, 즉 시대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승리는 그다음이다.

보수는 4·16과 5·18을 수용하고, 평화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청년과 젠더 콘셉트를 체화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통합당은 법제사법위원회를 ‘장판교’로 삼아 법안 통과를 막고, 삭발·농성·단식 등으로 대치하는 비토 전략으로 일관했다. 닥치고 반대의 봉쇄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식상하고 낡은 문법에 매달리다 선거에서 연속 패배했다. 만약 코로나19 때문에 뜻하지 않게 패배했다고 생각한다면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코로나 재난이 없었더라도 통합당은 패배했을 것이다. 재난으로 인해 격차가 벌어졌을 뿐이다.

통합당이 강령에서 5·18 정신을 명기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보수의 성공을 낳았던 성장·반북·지역주의의 3대 기축까지 벗어던져야 한다. 잘나가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꼰대 논객들의 지적질과 절연하지 않으면, 보수팔이 하는 호객 광대들의 호통질을 외면하지 않으면 보수는 시대 감수성을 회복할 수 없다. 이승만 신화를 버리고, 박정희 모델을 잊어야 한다. 미국 정치의 난맥상을 질타한 베넌의 표현대로, 반대만 하는 탈정책(post-policy) 정당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 지식인 이문열의 책 제목처럼 ‘시대와의 불화’로 인해 계속 쪼그라들 것이다. 호불호를 떠나 보수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진보도 바로 서고, 나라도 반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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