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발을 사게 되더라도 남북협력을 현재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립국인 오스트리아나 핀란드, 스웨덴이 냉전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린 것처럼,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자가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고금동서의 철칙이다.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020년은 앞으로 아마도 몇 가지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새로운 공황의 해로도 기억되겠지만 무엇보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전면화·표면화되어 신냉전의 수준으로 심화된 해로 기억되리라고 본다. 냉전 속에서 분단되어 두 병영국가의 폭력적 ‘체제 경쟁’을 맞본 곳은 한반도다. 신냉전은 아직 냉전 구조가 채 청산되지도 않은 한반도에,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파괴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응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냉전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양쪽 진영의 간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간판은 역사적 ‘명분’에 불과하다. 현재 중국의 체제는 국가 관료 자본주의이며, 불평등의 수준은 ‘사회주의’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불평등의 척도로 쓰이는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우면 소득이 골고루 분배되고, 1에 가까우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뜻인데, 마지막으로 발표된 중국의 지니계수인 0.467은 한국(0.345)은 물론 심지어 미국(0.414)보다도 심한 소득 불평등을 나타낸다. 한편으로, 간판은 ‘다당제 민주주의’지만, 전체 국부의 38.6%를 차지하고 있는 1%의 최상위층이 민주·공화 양당의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에서 정말로 ‘민’이 나라의 ‘주’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매우 순진한 상상이다. 사실 중·미 양국은 둘 다 과두정치(oligarchy)의 사회이며, 이 과두정치가 작동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다를 뿐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들의 싸움은 이념 대립이 아닌, 이권을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에 불과하다.
둘째, 미국과 중국이 세계체제에서 각각 차지하는 위치는 서로 다르며,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당분간 대신 차지할 리도 없고 차지하려 하지도 않는다. 미국은 일차적으로 군사 패권을 행사하면서 세계시장을 군사적으로 통제한다. 현재 미국은 약 70개국에서 600개가량의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17만명의 미군을 해외에 주둔시키고 있다. 대조적으로 중국의 해외 군사기지는 딱 한군데뿐이다. 이와 동시에 미군은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세계금융체계를 지배한다.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고는 지금도 달러화의 비율이 61%나 된다. 그에 비해 중국 위안화가 세계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로서, 달러는 물론 영국 파운드화(4.4%)보다 두배 적다. 중국은 여전히 일차적으로 생산 대국이지, 군사 대국도 금융 대국도 아니다. 세계 공업 생산에서 중국은 28%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은 16%밖에 안 된다. 이 생산 대국은 물론 앞으로는 군사 팽창이나 국제 금융계 침윤을 지향하겠지만, 이는 일차적으로 중국 주변 지역에서 이루어질 일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일이다. 중국이 미국과 같은 세계 군사·금융 패권을 확보한다는 것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셋째, 지난 미·소 냉전과 달리 신냉전 시대에는 세계의 지리적 양분도 일사불란한 진영 대치도 없으리라고 본다. 완벽하게 ‘친중’ 태도로 일관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의 유일한 공식적 군사동맹국은 바로 북한이지만, 북한의 주도층도 내심 가장 바라는 것은 대미·대일 수교를 맺는 일과 대중국 무역 의존도를 줄이는 일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완벽한 친미’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컨대 최근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을 겨냥해서 대미 군사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몇 가지 조처를 취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인 반면, 미국의 비중은 불과 8%다. 아무리 친미 제스처를 취한다 해도 이와 같은 무역 구조가 유지되는 이상 그 한계도 뻔할 것이다. 결국 중·미가 갈등하는 상황에서는 ‘나머지 세계’의 대부분 국가들이 절묘한 ‘줄타기’를 벌여야 할 것이다. 물론 각국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중·미와의 친소 정도가 각각 다를 것이다. 예컨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동반자적 관계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의 군사동맹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 해도 한국으로서는 몇 가지 ‘외교적 거리두기’가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첫째, 중·미 양국의 사실상의 과두지배 모델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의 모델이야 한국과 역사적으로 별다른 인연은 없지만,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모델은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한국의 부자 ‘싹쓸이’ 현상은 아직은 미국의 정도는 아니지만, 대대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미국 모델을 점점 더 닮아간다. 제도적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학생 시위대들이 ‘재벌 해체’를 외쳤던 1987년에는 재벌가들을 포함한 최상위 1%가 전체 소득의 9% 정도를 가져갔다. 지금은 최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6%를,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차지하는 시대다. 상위 10%를 비롯한 땅투기로 계속 올라가는 집값을 잡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서민들의 주거 마련은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다. 미국 모델을 완전히 떠나 부자 증세, 대기업이 내는 법인세 인상의 길로 가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한국에는 실패한 미국 모델이 아닌, 국가적 재분배를 기반으로 하며 무상 의료·교육을 포함하는 모델이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어느 한쪽의 다른 쪽에 대한 적대 행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당분간 한-미 동맹의 틀을 현실적으로 깰 수는 없겠지만, 미국의 반중국 도발에 가담해서는 득 볼 게 전혀 없다. 군사·금융 대국과 생산 대국 사이의 대립은 아주 오래갈 수 있고 결국에는 군사와 금융 패권을 여러 열강이 나누어 가지는 좀 더 다극적인 국제질서의 출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다극적인 국제질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한쪽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라기보다는 여러 쪽과의 호혜 관계, 그리고 가급적이면 모든 국제관계에서 대외 의존도 줄이기다. 사실 앞으로의 세계 판도에서 남북협력 강화는 남북 양쪽에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남북협력을 통해 북쪽이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남쪽이 대미 군사 의존도를 줄이면 남북 양쪽의 새로운 국제질서에의 안착에 크게 도움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반발을 사게 되더라도 남북협력을 현재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립국인 오스트리아나 핀란드, 스웨덴이 냉전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린 것처럼,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자가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고금동서의 철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