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부침을 거듭하는 마크롱이지만 공약을 밀어붙이든 철회하든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서 국민, 특히 반대자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반대자와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는 ‘소통의 용기’는 지금 시대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태
금태섭 | 정치인
김용태 전 의원님, 반대하는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는 소통의 용기가 이 시대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민심과 다른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힘이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그 과정을 전 국민에게 전달하는 노력에서 나왔다는 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오늘은 저도 소통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하고 때로는 적개심까지 갖는 두 집단(대한민국의 소위 ‘진보’와 ‘보수’도 여기에 해당하겠지요)이 어떻게 하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먼저 우리 편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보다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무오류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솔직한 토론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라는 근거 없는 고집으로 눈에 빤히 보이는 시행착오나 실수에 대해서도 억지를 부리며 부정하다 보니 불통의 정치가 판을 칩니다.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종전 후 20년이 지난 1995년 적국이었던 베트남을 방문합니다. 미국 역사의 오점이자 맥나마라 개인의 인생에도 큰 그림자를 드리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베트남전은 3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비극이었습니다. 또다시 이런 참상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치밀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는 전쟁 당시 베트남의 전략을 담당했던 지도자들과 만나서 이런 일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나 양측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철천지원수입니다. 어떻게 대화가 가능했을까요.
물론 무엇보다 그해에 양국 사이에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는 객관적인 조건이 결정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사람이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맥나마라는 <회고록―베트남의 비극과 교훈>이라는 책을 써서 베트남 전쟁이 미국이 범한 과오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더 나아가 북베트남의 최고사령관을 지낸 보응우옌잡 장군을 만난 자리에서 전면전의 발단이 된 ‘통킹만 사건’이 사실과 다르다는 말을 듣고는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회고록 개정판에 가필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맥나마라는 미국 내 좌파로부터는 “자신이 잘못했던 정책을 미화하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라는 비판을 받고 우파로부터는 “미국 병사들의 죽음이 잘못된 목적을 위한 개죽음이었다는 말이냐”라는 격렬한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는 베트남의 지도자들에게 미국 측의 진심 어린 사죄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양측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단 물꼬가 터지자 미국 측이나 베트남 측이나 전쟁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 양보 없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맥나마라를 비롯한 미국 인사들과 베트남 지도자들은 나흘에 걸쳐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던 ‘놓쳐버린 기회들’에 대해 토론합니다. 이때의 대화는 일본 언론인 히가시 다이사쿠가 지은 책 <적과의 대화>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때로는 날카롭게 상대방의 오류를 지적하는 대목, 그에 대해서 격분에 차서 반박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편의 잘못이나 판단착오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검증은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정치는 유독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합니다. 그러다 보니 ‘핑계의 정치’, ‘남 탓 정치’가 기승을 부립니다. 정부 여당은 정책의 잘못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과거 정권의 탓으로 돌립니다. 집권 초기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3년 차, 4년 차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보수정권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동문서답을 하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비판하는데 “자기들은 탄핵당한 주제에 무슨 군소리가 많으냐”라고 답하는 식입니다.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집권했을 때 국정농단으로 헌정 질서까지 무너뜨렸던 잘못에 대해서 정식으로 사죄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부 여당의 실책을 지적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 정치의 모습입니다.
소통을 하려면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약점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여야 어느 쪽이든 먼저 나서는 편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높이는 데 공헌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권자는 그 공을 잊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