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박 ㅣ 영어교육가·에세이스트
이성애자로 태어났다. 성애의 대상이 남성이다. 살고 있는 문화에서 남성들의 호모 소셜 문화가 강력하다. 남성들의 호모 소셜 문화란, 남성 간의 유대를 구축하는 문화로 이 문화의 문제점은 남성 위계 내 약자인 남성이 자신보다 강한 남성에게 굴종하고 열패감을 맛보면서, 자신의 미흡한 결핍을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연약한 대상들에게 푸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한국에는 강력한 호모 소셜 문화가 남성들의 정치적 성향, 연령에 관계없이 퍼져 있다.
남성 내 위계를 구분하는 분류 중 알파 메일(Alpha male)을 언급하는 분류가 있다. 물론 알파 메일이야 남성 위계 중 최상층을 차지하며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다수의 여성을 트로피로 쟁취하는 남성들이다. 알파 메일 근처에서 이들을 위해 일하는 다음 위계가 베타 메일로, 이들은 알파 메일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라간다. 이 위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위계가 바로 오메가 메일이고, 권력과 부와 외모와 매력이 없어서, 여자도 없는 그런 남성 집단이다. 사실 이 중에서 바람직한 여성의 파트너 남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알파이건 베타이건 오메가이건, 이들은 여성을 ‘전시하는 사냥감’이라는 말에서 온 ‘트로피’로만 여긴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모 소셜 남성 위계에서 아래쪽에 위치한 남성들은 열패감과 분노에 젖는데, 이들의 분노는 자신에게 군림하는 상위 위계 남성을 향하지 않고, 엉뚱하게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로 향한다. 다민족 국가에서는 이 분노가 타민족이나 타인종에게 향하기도 하지만, 아직 한 민족이라는 성향이 강한 한국은 내부에 두드러지는 소수자 집단이 오로지 여성이라서 이 분노는 대부분 여성들에게로 향한다. 이 현상이 불합리한 것은, 남성 위계의 논리대로라면 일단 부와 권력과 외모와 매력이 없어서 여자가 없는 것이 결과인데, 이들은 늘 여자가 없어서 자신들의 인생이 꼬인 양 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서, 그 분노를 만만한 대상에게 겨눈다.
남성들의 현 상태가 이렇다고 친다면 이제 여성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이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있고, 파트너를 택할 혹은 택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다. 구태여 누군가를 택해야 한다면 여성들이 택해야 하는 파트너는 ‘시그마 메일’들이다. 호모 소셜 문화와 그 위계를 거부하며 자라는 것이 남성들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경험이기에 이를 거부하는 남성인 시그마 메일은 강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매력들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드물고, 한국 문화에서는 더욱 드물 수밖에 없지만, 이들이 새로운 시대에 여성들에게 걸맞은 이성애 파트너들이다. 이런 남성들을 선택하겠다는 제스처를 여성들은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그널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호모 소셜 문화에 갇힌 남성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느린 방법이지만, 폭력을 피하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 및 약자에게 저지르는 많은 범죄와 악행의 근간이 바로 저 호모 소셜 문화이고, 남성들 역시 그 안에서 상층의 소수만 제외하고는 피해자인지라 저 문화에서 남성들이 벗어나는 것이 결국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다. 여성들은 시그마 메일들을 선택해서 긍정적인 강화를 해주어야 하고, 동시에 그런 남성들을 영화와 소설 속에 창조해서 보여주는 방법으로 문화적 가치를 서서히 바꾸어줄 필요가 있다.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바뀌기는 힘든바, 여성들의 현명한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이다. 로맨스라는 환상에 쉽사리 자신을 팔아넘기지 말고, 이성애 파트너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냉철하게 선택을 할지니, 모쪼록 호모 소셜 문화에서 동떨어져 홀로 선 남성을 선택하시기를 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에바 일루즈가 한 말을 드린다. “약자는 늘 사랑을 구하고, 강자는 늘 권력을 구한다.” 그래서 말인데, 사랑에 목숨 걸지 말고 사랑을 삶의 최고로 여기지도 말자. 그냥 삶의 일부일 뿐이다. 일부가 없다고 죽지 않고, 모두를 갖추고 사는 이도 드물다. 능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