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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민주노총 지도부 무덤 된 사회적 대화, 이대론 안된다”

등록 2020-08-26 04:59수정 2020-11-18 08:40

곽정수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박태주 경사노위 초대 상임위원

사용자단체·정부의 대화 의지도 부족했지만
사회적 협약 거부, 민주노총 책임이 가장 커
취약계층 고용 위해 대기업 임금 동결 필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없인 실패 되풀이해
적대적 노사가 ‘8번 합의’ 아일랜드 참고할 만

사회적 대화, 유연한 구조로 바꿔 일상적 협의
경사노위, 국회로 옮기면 독립·자율성 높아져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과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과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박태주(65)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위해 새롭게 출범시킨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초대 상임위원을 맡아 산파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청와대에서 노동개혁을 담당한 진보 성향의 노동 전문가다. 코로나 위기를 맞아 22년 만에 민주노총을 포함한 ‘완전체’로서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서 진통 끝에 마련한 사회적 협약이 민주노총의 거부로 빛이 바래 누구보다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위기감이 높아질수록 노사정 협력의 필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노사정 대화가 국민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협약 거부 사태에 대해 “노사정이 ‘함께 만든 실패’”라고 공동책임을 강조하면서도, “가장 큰 책임은 민주노총에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민주노총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확립이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또 “(경사노위 중심의) 사회적 대화 체계도 느슨하고 유연한 구조로 재설계해, 일상적인 정책협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인터뷰는 2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됐다.

―지난 7월 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이 체결됐다. 경영계의 고용 유지 노력과 노동계의 근로시간 단축 및 휴업 협력 등이 핵심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거부하면서, ‘사회적 대화 무용론’ 또는 ‘민주노총 없는 사회적 대화론’이 제기된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국회에서 민주노총 없이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가, 번복하는 일이 있었다. 민주노총이 합의하지 않았다고 배제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사고다. 노동시장 주체의 참여가 배제된 채 정부 일방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사회적 갈등을 키울 수 있다. 정책 실패의 위험도 커진다. 제1 노총이고, 노사 갈등의 당사자인 민주노총이 없는 사회적 대화는 의미가 반감된다.”

―코로나 위기에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경제 위기를 차단하는 효과가 크다. 사회적 협약에 대한 열망이 높은 이유다. 위기 극복과 노동개혁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사회적 대화는 이런 갈등을 푸는 ‘갈등의 사회화’ 과정이다. 노사관계를 대립과 갈등에서 양보와 타협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정부로서도 국회 입법에 도움이 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코로나 극복의 주요 전략으로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는데.

“사용자가 고용 유지에 노력하는 대신 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휴업에 협력하고,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임금 손실을 보전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한다.”

―선진국은 사회적 대화로 위기를 극복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가?

“이탈리아는 정부와 3개 노총, 4개 사용자단체가 노사정 합의를 끌어냈다. 코로나 피해 기업이라도 60일간 해고 금지, 일시적 휴직 확대와 정부의 임금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페인, 독일, 스웨덴도 성과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이나 스웨덴은 공식적인 사회적 대화기구가 없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2008년 경제 위기를 겪으며 사회적 대화가 무너졌다. 코로나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회 주체들의 ‘공유된 이해’가 사회적 대화를 끌어낸 것이다.”

―이번 사회적 대화의 아쉬움을 얘기하면서, 민주노총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민주노총의 자세와 역할은 총체적인 부실이었다. 사회적 대화 요구에서 잠정합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대의원대회에서 합의안이 부결되기까지 정책이나 전략, 내부 소통과 조율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대한 절박성이나 진정성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실패는 이미 예고됐던 일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김명환 위원장이 지난 4월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고 사흘 뒤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이 경총 앞에서 경총 해체 촉구 시위를 했다. 경총이 해고 요건 완화 등의 입법을 요구한 게 발단이지만, 협상 파트너에 대해 할 일이 아니었다. 지도부의 지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사정 대화 제안도 한국노총과 한마디 사전 협의가 없었다. 대화 착수 뒤에도 파행이 지속됐다. 대타협은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주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요구만 하고, 줄 것에 대한 준비나 논의가 없었다. 취약계층의 고용을 지키려 했다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동결 정도는 충분히 고려할 만했다. 실제 노동계 일부에서 ‘임금동결론’이 제기됐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갖춰지지 않아 지도력이 상실 내지 붕괴됐다. 지도력이 취약하다 보니 사회적 대화에서 양보를 못 하고, 양보하더라도 합의를 못 하며, 합의하더라도 이행할 능력이 없다. 기업별 체제로 인해 중앙의 의사결정 권한이 제한되고 ‘정파 구조’로 인해 조합원 의견이 왜곡된다. 김명환 위원장은 ‘특정 계파에 의해 100만 대중조직의 의사결정이 방해받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주요 간부들이 정파에 소속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원칙인 ‘조합원의 의견을 대표하고 책임진다’는 원리가 실종됐다.”

―민주노총이 협약안을 거부한 직접적 이유는 해고 금지 등의 주장이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출범한 경사노위 참여도 거부했다.

“민주노총 내부에 사회적 대화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합의를 강요하는 대화판에서 민주노총은 기껏 양보나 하면서 들러리를 선다는 의심이다.”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의 9층 정원에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의 9층 정원에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번 사태의 책임이 민주노총에만 있는가?

“모든 책임을 민주노총으로 돌리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협약의 불발은 노사정이 ‘함께 만든 실패’다. 경총 등 사용자단체나, 정부도 사회협약을 맺는 일이 절박했는지, 절박한 만큼 뭘 양보했는지 의문이다.”

―사용자의 고용 유지 약속은 추상적이다. 또 노동계가 해고 금지 대신 노동시간 단축, 고용보험료 인상 수용 등 양보안을 내놓았을 때도 경총은 임금 동결 내지 삭감, 노동 유연성을 고집했다.

“사용자 단체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경총은 노사정 대화 직전인 3월 말 일반 해고 도입,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등의 입법을 국회에 요구해 노동계의 분노를 샀다. 사회적 대화에서도 임금 절감과 노사분규 자제 등의 고통분담,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간 유연화를 주장했다. 이는 코로나 이전부터 요구해온 내용이다. 고용을 지키겠다는 의지나 사회적 대화에 대한 절박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자세는 어땠는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존중사회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다.

“정부가 이미 내놓은 대책 외에 노동을 위해 추가로 양보할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럴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여대야소 국회 때문에 입법을 위해 사회적 대화에 의존할 필요성이 약화됐다. 단지 모양을 갖추기 위해 사회적 협약을 체결하는 ‘사진 한방’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적 대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개선 과제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확립이 최우선이다. 총회를 통해 전체 조합원의 의견이 최종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현행 민주노총의 규약으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정파 구조도 돌파할 수 있다.”

―현재의 민주노총 상황에서 가능한 일인가?

“이탈리아 노조는 1993년에 임금 인상 억제를, 1995년에는 연금개혁안을 포함한 사회협약을 노동자 총투표에 부쳤다. 투표를 앞두고 무려 4만번의 현장 집회가 열렸다. 결과는 모두 60%를 넘는 찬성이었다. 이를 출발점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 대화가 유력한 정책 형성 수단이 됐다. 적대적 노사관계로 유명한 아일랜드도 1987년 이래 3년마다 한번씩 총 8번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첫 합의 당시 총연맹은 임금 동결 대신 고용안정, 소득세 감면, 사회안전망 확충을 받는 방안을 대의원들의 반대를 뚫고 조합원 총투표에서 통과시켰다. 노조의 약한 위계적 권위를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로 극복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설명과 현장 토론이 중요하다. 내부 민주주의가 사회적 대화의 기틀이 된다.”

―사회적 대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한가?

“노동계에서는 경사노위가 ‘여우에게 제공된 호리병에 담긴 음식’과 같다는 말이 있다. 먹음직스럽지만 먹기 힘든 음식이라는 의미다. 김명환 위원장의 사퇴가 보여주듯,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회적 대화를 할 때마다 목을 걸어야 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2월 사회적 합의 때도 위원장이 사임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임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대화는 정책협의다. 합의를 강제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화되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가 더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무덤이 되지 않으려면 ‘느슨하고 유연한 사회적 대화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도 협의기구로서의 성격을 강조한다. 사회적 대화가 반드시 경사노위에서 이뤄질 필요는 없다. 노사정이 모두 모여서 할 필요도 없다.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간담회, 정책협의, 포럼 등 다양한 이름이 가능하다. 의제도 유연해야 한다. 지금도 업종·지역 차원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협의가 이뤄진다. 일상적으로 ‘셔틀 외교’ 하듯이, 마실 가듯이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독일은 사회적 대화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노사정 정책협의가 이뤄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고용 변화에 대비한 ‘노동(아르바이트) 4.0’이 대표적이다.”

―경사노위를 국회로 옮기자는 방안도 있는데.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대통령 자문기구여서,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에 제약이 있다. 국회로 옮기면 민주노총의 참여도 더 쉬워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적 협약 때 민주노총의 불참을 아쉬워하면서, 협약 이행을 강조했다. 앞으로 정부의 역할은?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했다. 그 핵심은 노동을 개혁의 주체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동을 배제하고 성장 정책으로 회귀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합당이 ‘10대 정책’에서 일하는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약속했다. 통합당의 변화가 사회적 대화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나?

“노동시장 양극화와 차별 해소, 고용 안전망과 고용 유연성 병행은 이제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통합당이 새로운 정책정강을 어떻게 구현해갈지 지켜봐야겠지만, 국회가 적극적으로 민주노총을 포함한 정책협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jskwak@hani.co.kr

서울시 노동이사 도입·현대차 밤샘노동 폐지 ‘산파역’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누구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상임위원은 지난 30여년간 노동문제에 관해 이론·현장·정책을 두루 섭렵한 노동 전문가다.

영국 워릭대학에서 노사관계를 전공하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를 역임했다. 산업연구원 재직 시절인 1987년 정부출연연구기관 최초로 노조 결성을 주도했고, 민주노총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2003년 청와대 ‘노동개혁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다. 2014년엔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도와 서울시 산하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노동이사제는 직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다.

2007년부터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노사전문위원회와 노사자문위원회 대표를 맡아 ‘주야 10시간 2교대제’를 ‘주간 연속 8시간 2교대제’로 전환해 장시간·밤샘노동을 없애는 데 가교 구실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시킨 경사노위의 초대 상임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한국철도공사 노사가 공동으로 만든 ‘조직문화혁신위원회’ 대표도 맡았다.

저서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에서 “현대차 노사관계가 바뀌면 한국 전체의 노사관계도 바뀐다”고 역설했다. 현대차 노사가 ‘글로벌 허브 전략’의 비전을 공유하면서 회사는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노조는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는 대타협(빅딜)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또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공동 노력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함으로써 ‘국민 기업’과 ‘국민 노조’로 거듭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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