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환경부가 27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특별법’)의 시행령(대통령령) 등 개정안을 재입법예고했다. 다수 언론이 사망자 특별유족조위금 액수 상향을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금액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이런 보도를 조장하는 정부의 수준은 그렇다고 치자. 그뿐일까. 맥락 없이 긍정적인 언어로만 설명되어지는 대통령령은 과연 긍정적이기만 할까. ‘대통령’령인데 대통령은 과연 그 내용을 알고는 있을까.
대통령령은 대통령이 법률의 위임에 의해 혹은 법률의 집행을 위해 제정한다. 관련 정부부처에서 주로 입안을 하고 입법예고, 법제처,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 확정, 공포되게 된다. 법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정부부처, 기업, 기타 이해관계자들이 보이지 않게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 할 위험성이 높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만 제대로 된 감시의 눈이 미치기가 쉽지 않다.
‘주객전도’형 대통령령이 있다. 법률은 애매한데, 대통령령에서 중요한 사항들을 정하는 경우다. 구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그 대표적인 예다. 법률에는 국가정보원장이 탈북자들에 대해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규정만 있었다. 하지만 시행령은 180일간 구금을 가능하게 하고 그 구금의 내용·방법, 구금시설의 설치·운영을 국가정보원장이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해 추상적 법률규정을 구금의 근거로 둔갑시켰다. 수많은 탈북자들이 이를 근거로 장기간 강제구금되었고, 일부 법령 개정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설상가상’형도 있다. 불합리한 제도를 법률에 도입하고 그보다 더 문제적인 요소들을 시행령에 규정하는 경우다. 약 10년 전 난민법이 제정되면서 공항 등에서 하는 난민신청에 대해서는 난민심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심사를 할지 말지를 심사하는 기이한 제도가 도입됐다. 문제는 시행령에서 난민심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사유로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 등 난민심사에서 실체적인 판단이 내려져야 할 부분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왜곡되고 뒤틀린 채 제도가 운영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현실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유형은 ‘아전인수’형이다. 정치적 의도, 경제적 이해 등으로 시행령이 법률의 내용을 축소시키고 무력화시키는 경우다. 구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구 세월호특별법’) 시행령과 가습기살균제특별법 시행령이 대표적이다. 구 세월호특별법은 피해자가 특별법상 배상·보상금을 받으면 판결에 준하는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시행령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례 없는 문구를 삽입하여 피해자들에게 굴욕적인 합의를 강요했고 이 조항에 대해서는 결국 위헌 결정이 이루어졌다. 가습기살균제특별법에서는 피해 판정 혹은 지원의 핵심적인 기준에 관해 ‘상당한 개연성’이 있으면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으로 ‘관련성’이 있으면 특별구제계정을 통한 지원을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시행령에서는 이를 더 엄격한 ‘상당한 인과관계’와 ‘의학적 개연성’으로 둔갑시켜 피해구제를 제한했다.
많은 경우 대통령이 잘 모르는 사이에 ‘대통령’령의 ‘클라쓰’가 완성된다.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정부를 대표해 공식사과하고 피해 지원과 재발 방지를 약속한 지 3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과연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묻고 있다. 대통령의 약속이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길게는 사반세기 동안 고통받아온 생존자들, 법원과 사회의 생명 가치에 대한 기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상향시켜놓은 1천명이 넘는 희생자들, 현재진행형인 참사를 이제는 제발 멈춰달라고 절규하는 피해 가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철학도 내용도 알 수 없는 ‘오리무중’형 시행령,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일부 개선을 통해 당장의 불편함을 모면하는 ‘차일피일’형 시행령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무능이지만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상처를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