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에도 말썽꾼이 있다. 보통 새말은 이미 있는 말을 재활용한다. ‘유리’와 ‘창’이 만나 ‘유리창’이 되고 ‘팥’과 ‘빙수’를 더해 ‘팥빙수’를 만든다. 콩 심은 데 콩 나듯 자연스럽다.
그런데 말의 말썽꾼은 낱말의 목을 댕강 잘라 다른 말의 허리춤에다 이어 붙여 버린다. 이를 혼성어라 하는데, ‘라볶이’(라면+떡볶이), ‘호캉스’(호텔+바캉스), ‘강통령’(강아지+대통령), ‘브로맨스’(브라더+로맨스) 같은 말이다. 댓글이 엉망이면 ‘댓망진창’이고 김씨가 엉망이면 ‘김망진창’이다. ‘턱스크’(턱+마스크), ‘등드름’(등+여드름), ‘언택트’(언+콘택트)는 앞말이 1음절이지만 뒷말의 허리를 잘라 붙였으니 같은 부류다. ‘짜파구리’는 혼성의 중첩. ‘짜파게티’가 이미 ‘짜장면+스파게티’의 혼성인데, 여기에 다시 ‘너구리’를 잘라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되었다.
약간의 규칙성도 있다. 앞말은 앞부분을, 뒷말은 뒷부분을 남겨서 붙인다. 한쪽은 머리채를 잡혔고 다른 쪽은 꼬리를 잡혔으니 몸뚱이를 숨겼어도 다 잡힌 거와 진배없다. 새말을 만드는 좋은 전략인지 한 해 동안 생긴 신어 가운데 25%가 혼성어라 한다.
문제는 혼성이 원래의 단어가 갖고 있던 존재 근거를 흔들어 놓는다는 점이다. 망측하게도 한 단어인 ‘너구리’를 잘라 ‘너’는 동댕이치고 ‘구리’만 갖다 쓰다니! 말의 입장에선 순교. 어원이나 질서를 따지는 분에게는 속 쓰린 일이겠지만, 새말을 만드는 사람들은 오직 말맛이 살고 입에 착 달라붙는지가 기준이다. 이런 말썽꾼들 덕분에 사는 게 아주 심심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