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소득 1억원이 넘는 분들에게 30만원 준다고 추가 소비를 더 할까. 식당에서 원래 쓰던 카드 긁었더니 재난지원금이 나갈 뿐이다. 소득이 없어지거나 급감한 분들에게 주어야 소득 감소도 줄이고, 안 주면 못 했을 소비를 하게 한다는 점에서 소비 진작 차원에서도 선별지급이 타당하다.
김기식 ㅣ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사회경제적 파장은 상반기 1차 확산기보다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 급감과 실업, 폐업, 휴업 등으로 어려운 계층의 고통은 더 커질 것이며, 어렵게 버텨오던 기업들 중 상당수가 한계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미 실업급여 지급액이 월 1조원을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고용 상황도 더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현재로서는 금융자금 지원 외에는 재정 투입이 사실상 유일한 정책 수단이다. 문제는 재정수요는 폭증하는데 경제가 어려우니 세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런 재난적 상황에서는 빚을 더 내서라도 재정적으로 적극 대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속된 말로 국가재정이라고 땅 파면 돈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부채의 대부분이 국내 부채인 일본이나 중국과도 다르다. 경제 위기 시 대처 능력에 상대적 제약이 있다. 따라서 부채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중장기적인 재정 운영의 신중함과 함께 정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책 수단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차 재난지원금 논란이 뜨겁다.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지급이 불가피할 듯하다. 지급하더라도 시기는 상황이 진정되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된 시점이 적절하다. 문제는 지급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선별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부조, 재난지원금 같은 소득지원 성격의 현금 급여는 소득에 따라 대상을 한정해 지급하는 것이 제도의 성격이나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일반적이다. 더구나 차별은 소수자, 약자에 대한 개념인데, 소득지원정책에서 대상 선별을 고소득층, 중산층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의 선별이 보편복지의 후퇴이고, 보수의 논리라는 주장도 부적절하다. ‘보편은 진보, 선별은 보수’라는 이분법은 이론적으로, 실증적으로 잘못된 프레임이다. 아동수당 같은 수당제는 보편적인 것이 일반적이지만, 기초생활보장제 같은 공공부조는 어느 나라나 선별적이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은 나라마다 다른데 조합주의 모델인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가 제도적으로는 오히려 보편적 모델로 운영되고 있다.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은 현재 소득과 무관하게 다 필요하니 보편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득이 부족하지 않은 연소득 1억원이 넘는 분들이나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회사 등 코로나 상황에도 소득 감소가 없는 분들에게 소득지원을 하는 것은 소득지원정책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구나 빚내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차라리 같은 재정 규모라면 어려운 계층에게 상반기 두배의 소득지원을 하는 것이 정책의 목적에 부합한다.
재난지원금은 복지 차원의 소득지원정책이 아니고, 경제정책 차원의 소비 대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제정책이라 하면서 차별이나 보편복지의 후퇴를 거론하는 것도 부적절하지만, 1차 재난지원금의 소비효과를 근거로 전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15조원에 가까운 돈을 몇개월의 시한을 두고 지급했는데 소비효과는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이냐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연소득 1억원이 넘는 분들에게 30만원 준다고 추가 소비를 더 할까. 식당에서 원래 쓰던 카드 긁었더니 재난지원금이 나갈 뿐이다. 소득이 없어지거나 급감한 분들에게 주어야 소득 감소도 줄이고, 안 주면 못 했을 소비를 하게 한다는 점에서 소비진작 차원에서도 선별지급이 타당하다.
그러나 대상자 선별에는 선정 기준의 객관성, 선별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 등 간단치 않은 현실적 문제가 있다. 상반기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 결정도 이런 현실적 문제에서 비롯된 바 크다. 문제의 핵심은 시스템의 미비로 전국민 소득, 자산 파악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참에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국세청이 전국민의 소득, 자산을 파악해 세금만이 아니라 사회보험료 부과·징수 업무, 나아가 소득지원적 성격의 공공부조 대상자 선정까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다.
재난지원금의 선별 여부는 분명 정책적 논란의 대상이다. 정치인이 이슈를 주도하고자 하고, 정치적 논리를 설파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정책적 합리성을 넘어 대중적인, 특히 중산층 이상의 지지를 받기 위해 진보주의자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논리를 선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