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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재난지원금, 이번에 달라져야 할 이유 / 홍장표

등록 2020-09-07 14:23수정 2020-09-08 09:35

홍장표 ㅣ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5월 전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가뭄에 단비였다. 재난지원금으로 온 국민이 재정의 효능을 체감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재난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재난지원금과 4차 추가경정예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보편 지급이냐 선별 지급이냐 논란이 뜨거웠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국민에게 지급하되 이번에는 가구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여러차례 나누어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무조건성, 보편성, 지속성 같은 기본소득의 원리를 재난지원금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하위 50%나 70% 가구로 선별해서 지급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코로나19 재난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니까 저소득 가구를 선별 지원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코로나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신속하게 지원하는 데 있다.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처럼 새로운 사회복지수당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재난지원금은 재난구제 목적에 맞도록 어떻게 지급하느냐의 문제이지,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의 이념 논쟁을 벌일 문제는 아니다.

기본소득론은 원래 토지나 천연자원 같은 공유 자산에서 나오는 이익은 시민권에 근거해 모든 국민에게 균등 배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복지수당 제도를 전면 개편하자는 흐름이다. 그런데 설령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제도 개편에 동의한다 해도, 지급이 단순하고 신속하다는 이유로 재난 피해자들에게 써야 할 돈을 기본소득제 시험에 쓸 수는 없다. 재난구제와 복지수당 개편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득 하위 가구를 선별해 지급하는 것이 대안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 2200만가구를 두 쪽으로 나눌 때, 국민들이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피해구제라는 재난지원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작년이나 재작년 소득을 기준으로 가구를 선별하면, 수많은 코로나 피해자들이 제외되는 일이 생길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1차 지급 때에는 지원의 시급성 때문에 피해 여부나 정도와 관계없이 모든 가구에 지급했다. 정책의 원취지와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피해자를 선별해 지원하는 것에 비하면 소득격차 완화나 소비증진 같은 부수적인 정책효과의 가성비도 높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부터는 정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재정투입의 가성비도 따져봐야 한다.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노래방, 피시방, 카페, 음식점같이 영업제한 조치가 내려진 업종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매출이 크게 감소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실직자와 휴직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프리랜서, 예술인처럼 직장을 잃거나 노동시간이 줄어든 사람들도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청년, 여성, 노인 등 사회보험 밖에서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취약계층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

피해 계층에 대한 지원은 피해 정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는 매출 감소, 임금근로자나 특고는 소득 감소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이 기준은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지난 6월부터 특고와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에게 지급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에 이미 적용되었다.

재난 상황에서 요건심사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신청을 받으면 먼저 지급하고, 이후 심사·정산하도록 해야 한다. 소득변동을 수시로 파악하고 필요시 곧바로 지원할 수 있도록 국세청과 사회보험 행정도 바꿔야 한다. 코로나19 재난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숙제는 소득이나 매출 감소와 같은 예기치 못한 위험에 신속히 대처할 안전망을 만들라는 것이다. 정부가 전국민고용보험 같은 대대적인 사회안전망 확충 사업에 착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3차, 4차 지원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재난 상황이든 평상시든 어느 누구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안전망이 튼튼한 나라를 앞당기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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