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ㅣ LAB2050 대표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놓고 한판 입씨름이 벌어졌다. 1차 때와는 달리 소득이 줄어든 자영업자 등에게만 선별해 지급하자는 주장과, 1차 때처럼 전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선별지급론자들은 고소득자에게 지급하면 소비가 늘지 않고 저축을 많이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정된 재정을 쓰는 것이니 재난의 경제적 피해를 많이 입은 쪽에 집중해 쓰자는 논리를 폈다.
반면 보편지급론자들은 모두에게 지급해야 소비효과가 더 커지고 정부 신뢰도 높아지며 사회 연대감도 강화된다는 논리를 폈다. 재정이 문제라면 나중에 피해를 덜 입은 쪽이 명확해졌을 때 세금을 더 거두어 채워 넣자고 주장했다. 선별지급을 할 경우 모호한 선별과정 탓에 공정성 시비가 커질 것도 우려했다.
정부는 결국 선별지급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이 쟁점들에 대한 답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의문이다. 우리는 반년 전과 똑같은 논쟁을 했는데 왜 결론은 정반대가 되었을까? 왜 반년 동안 우리는 이 쟁점들을 해결할 근거를 찾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정책효과를 입증하려 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는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을까?
재난지원금 논쟁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정책 논쟁은 늘 근거가 희박한 입씨름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좀 더 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제 논쟁을 되짚어보자.
기본소득제가 본격적으로 현실의 정책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년 전쯤부터다. 그 이후 대중매체와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기본소득제의 효과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쏟아졌다.
더 많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게 나은지,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게 나은지를 가리자는 입씨름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게 되는 반면, 기본소득제는 소득이 생겨도 지급하니 근로의욕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업급여가 충분히 넓고 두텁게 지급된다면, 이 안전망 덕에 사람들이 안심하고 더 나은 직장으로 전직을 시도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른 쪽에서는 기본소득제가 사회 전체적으로 근로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무급 자원봉사 활동 등을 늘려 사회적 신뢰를 높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조건 없는 소득이 사람들의 자발적인 노동을 늘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모두 중요한 쟁점이다. 문제는 모두 증거 없는 입씨름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어느 정치세력이 이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대중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의견도 표변한다. 주장만 있고 증거가 없으니 논쟁 뒤 논의는 제자리로 돌아가기 일쑤다.
입씨름을 생산적인 토론으로 격상시키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과학적 정책실험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비슷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에게는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일부에게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 일정 기간 관찰하며 비교하면 된다. 이런 작업을 실제 진행하는 게 정책실험이다.
지방자치제도를 잘 활용하면 좋은 정책실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역은 각각 인구소멸이나 고용위기 등 고유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낸다. 육아수당, 농민수당, 청소년수당처럼 기본소득제와 비슷한 제도도 많다.
하지만 제대로 된 효과 평가는 되지 않는다. 그때그때 정책이 덧붙여지면서 복잡해지기만 한다. 이런 정책들이 나중에 부담이 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책들을 비교 가능한 정책실험으로 유도하면 큰 예산 들이지 않고도 기본소득제 관련 쟁점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정책 논의 수준을 입씨름에서 과학으로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정책실험은 적은 예산으로 정책의 효과를 미리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100조원의 예산을 제대로 쓰기 위해 그 0.01%인 100억원을 들여 정책실험을 먼저 진행하고 시행 여부를 정하자는 이야기다.
앞으로 2년 동안이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할 적기다. 가장 논쟁적인 이 제도를, 가장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거치며 정리해보자. 입씨름과 힘싸움으로 정책이 결정되게 하지 말고, 전국민이 함께 확보한 근거를 기반으로 토론하고 결정하도록 하자. 그 결과로 도입되는 정책이야말로 단단한 반석 위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