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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같거나 다르거나] 여론조사에 목을 매는 정치 / 김용태

등록 2020-09-09 15:07수정 2020-09-10 02:37

보수 정부 시절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란 말을 들은 국회의원이 지지자들로부터 빗발치는 비난을 받은 것은 그런 경향의 극단적인 모습입니다. 진보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통령이 강조하는 정책에 반대하거나 청와대를 비판하는 정치인은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을 각오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참여가 정치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직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때입니다. -금태섭

김용태 | 정치인

금태섭 전 의원이 말씀하신 대로 정치에서 성공하려면 리더십만큼 팔로어십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히 ‘팔로어십 전성시대’입니다. 소셜미디어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팔로어십은 리더십을 넘어서서 정치인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었습니다. 열성적인 지지그룹,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지지를 보내는 팬덤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정치인에게 충성스러운 팔로어는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반대자의 갖은 중상모략을 극복하고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난관을 돌파하여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이만한 버팀목은 또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팔로어십이 좋은가, 무엇이 리더십과 팔로어십의 바람직한 관계인가 아니겠습니까? 리더로서 팔로어의 의중을 살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팔로어의 뜻을 대중의 전체 의사로 간주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제대로 된 리더십이 아닙니다. 자신이 따르는 리더가 스스로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또한 결코 올바른 팔로어십이 아닙니다.

그간 우리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지도자 주변에 올바른 팔로어십을 지닌 조력자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따르는 지도자의 리더십을 무오류의 절대성으로 승화(혹은 타락?)시키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는 팔로어들이 생겨났습니다. ‘존영 사건’ 같은 황당무계한 소동이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묻지마 지지는 이러한 팔로어십의 소산일 것입니다. 그릇된 팔로어십은 보통은 가상공간에서 일사불란한 세 과시로 표출되지만 심심찮게 광장 정치로 이어집니다. 자신들의 생각만이 전체의 의사라 주장하고 자신의 리더를 결사옹위합니다.

금 전 의원께선 올바른 팔로어십을 말씀하셨지만 전 지금이야말로 올바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팔로어의 실망과 비판이 있더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끈질기게 소통하고 타협할 수 있는 인내심과 정치력이 갈가리 찢긴 지금의 우리 정치에 진정 필요한 리더십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정치엔 그릇된 팔로어십만큼이나 올바른 리더십, 제대로 된 정치를 위협하는 게 또 있습니다. 여론에 대한 맹목적 추종입니다. 그리고 그 여론을 반영한다는 여론조사에 대한 맹목적 믿음입니다.

지금처럼 여론조사가 정치를 규정하고 좌우한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한 주가 시작되면 조사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대통령과 각 정당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냅니다. 언론사들도 여론이라는 것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여론조사 자체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조사 결과를 대서특필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론조사 수치에 맞추어 세상을 파악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사자 격인 청와대와 각 정당은 매일매일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국가의 주요 정책들에 대해서도 그때그때 조사를 실시하여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여론을 살펴 필요에 따라 정책을 수정할 수는 있습니다. 민심에 반해 고집스레 정책을 추진하다가 정권 자체가 위태롭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여론에 계속 휘둘리면, 나아가 그때그때 행해지는 여론조사에 종속된다면 제대로 된 정치가 가능할까요?

오늘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입니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정치인에게 자신의 권력을 위임합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위임받은 동안(임기 동안) 각종 과제를 수행하여 그 결과로써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 과제 중에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유권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여론에 따라 방향과 속도를 바꾸다 보면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분명한 소신을 갖고 주어진 임기 동안 과제를 수행하고 다음 선거에서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화될수록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국 사태에선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인파의 수를 헤아리고, 탈원전 정책을 공론조사로 결정하고,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 여부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하지만 광장 정치와 여론조사 정치가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 정치를 대신할 순 없을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집권세력은 의회, 관료, 전문가 집단, 언론과의 긴장과 협조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과제를 수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선거에서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발견해낸 최상의 민주주의 정치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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