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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아베노믹스가 주는 교훈 / 이강국

등록 2020-09-21 16:22수정 2020-09-22 10:51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얼마 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은 역시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아베노믹스다. 인구 변화와 경제구조가 비슷한 한국은 일본을 우리의 미래라며 주시해왔다. 또한 저성장과 저인플레이션, 고령화와 정부부채 증가 등 최근 ‘일본화’의 우려가 큰 선진국들도 아베노믹스에 주목했다.

아베노믹스는 절반의 성공이자 실패였다. 경제성장은 약간 회복되었으나 일본 경제는 작년 4분기 이후 다시 경기침체에 빠졌다. 2%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디플레이션으로부터 탈출하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한편 노인과 여성 중심으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 고용률이 2012년 56.5%에서 2019년 60.6%로 높아졌지만, 2019년 실질임금 수준이 2012년보다 낮을 정도로 임금 상승은 부진했다. 다만 시간당 실질임금은 높아졌고 가구의 소득분배가 악화되지는 않았으며 노동소득분배율이 최근 회복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2017년 이후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했음에도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저축률이 높아지고 소비 증가는 지지부진하다.

그렇다면 아베노믹스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된 확장적인 거시경제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보수적이던 일본 은행을 움직인 아베노믹스의 첫번째 화살은 금리 하락과 엔화의 절하를 통해 일본 경제가 침체로부터 탈출하고 회복되는 기초를 제공했다. 물론 통화정책이 사람들의 인플레 기대를 자극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둘째, 높은 정부부채 비율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는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30%를 넘을 정도로 재정 문제가 심각하여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이 높았다. 그러나 경제회복과 디플레 탈피로 명목국내총생산이 2012년 회계연도 494.4조엔에서 2019년 552.5조엔으로 증가했고 소비세도 인상하여 세수가 늘어났다. 또한 지속적 국채 매입으로 중앙은행이 이미 국채의 약 47%를 보유하고 있으며 10년 국채금리가 제로 수준이다. 사실 아베 정부 들어 정부지출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와 국채발행액은 줄었고 정부부채 비율은 안정화되었다.

오히려 침체를 유발한 두차례 소비세 인상의 문제를 들어 재정확장이 올바른 방향이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올해 2분기에는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마이너스 7.9%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전국민에 대한 10만엔의 현금 지급, 자영업자와 기업에 대한 월세와 고용유지 지원 등 국민소득의 약 10%에 이르는 대규모 재정확장을 실시했다. 단기적으로 정부부채가 더 높아지겠지만 심각한 경제불황을 막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성장과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마지막 교훈은 건전한 경제회복을 위해 거시경제의 구조적인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비정규직의 증가 등을 배경으로 2000년대 들어 생산성 상승에 비해 임금 상승이 많이 뒤처졌다. 아베 정부도 말로는 임금 상승을 독려했지만 한계가 많았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균형 없이는 안정적인 소비와 총수요의 확대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네번째 화살로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으며, 일본 정부도 법적으로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인상해왔다.

아베 정부의 얼굴이었던 스가 요시히데를 내세운 새 정부도 아베노믹스 거시경제정책의 유산을 계승할 전망이다. 그는 언론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점수를 90점으로 생각한다며 다른 후보들보다 높게 평가했고, 기자회견에서도 일자리 유지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관료의 기득권을 비판해온 그는 규제개혁과 행정의 디지털화, 그리고 통신비 인하와 지방은행 개혁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는 흔히 거시경제학의 무덤으로 불려왔다. 제로금리에도 물가가 오르지 않고 실업률이 낮아도 임금이 오르지 않아서 기존 경제학의 상식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이나 유럽도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으니 일본은 다른 나라의 미래를 먼저 겪은 셈이다. 아베노믹스는 막을 내렸지만 누구의 이름을 붙이건 불황에 맞서는 정부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거시경제학을 넘어 정치경제학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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