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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육사 순혈주의’와 ‘비육사 참모총장’ / 권혁철

등록 2020-09-23 14:40수정 2020-09-23 19:24

장교들에게 9월은 ‘초조주’의 계절이다. 군은 9월에 진급 심사를 시작해 10·11월에 진급·보직 인사를 발표한다. 인사 대상 장교들은 저녁이면 선후배, 동료들과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 술(초조주)을 마신다. 인사철을 앞두고 충남 계룡산 ‘장군봉’에는 근처 계룡대(육·해·공군 본부)에 근무하는 대령들이 몰린다. 대령들 사이에서는 ‘장군봉에 올라야 장군이 될 수 있다’는 입소문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매년 가을 장군 진급 발표가 있으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까지 들썩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덤 속 장군들도 ‘올해 진급자가 누구냐’며 수군거린다는 거다. 장교들의 진급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장군 진급에는 목숨을 걸다시피 매달린다. 위관급(소위~대위)에서는 ‘동기’지만 영관급(소령~대령)에선 경쟁자가 되고, 장군이 되면 적이 된다는 말도 있다.

역대 정부는 장군 인사 때마다 “서열과 기수, 출신 등에서 탈피하여 오로지 능력과 인품을 갖춘 우수 인재 등용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해왔다. 군대 밖에서는 출신이 고향을 뜻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육사 출신’과 '일반 출신'을 나누는 말이다. 일반은 3사관학교, 학군(ROTC), 학사 등 육사 출신이 아닌 장교를 통칭하는 말이다. 일반 출신 장교들은 “우리가 일반이면 육사 출신은 특별이냐”고 반문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까지 육군의 장군(준장) 진급자 중 육사 출신이 77~80%, 3사 출신이 8~13%, 학군 출신이 5~8%, 기타가 1~5%였다. 일반 출신 장교들은 대부분 소령, 중령에서 군 생활을 마감하고 드물게 대령까지 간다. 일반 출신이 장군이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영관급에서 착착 진급을 하고 경력을 쌓아야 장군이 될 수 있는데, 육사 출신에 밀리기 때문이다. 2016년 육군의 출신별 소령 진급률을 보면, 육사 출신은 77%였다. 이에 비해 학군 출신은 32%, 3사 출신은 30%, 학사 출신은 29% 등으로 육사 출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군 당국은 공식 부인하지만, 영관 장교 진급 심사에서 육사 출신 몫으로 일정 비율을 먼저 할당하는 ‘육사 할당제’가 오랜 관행이었다.

국방부는 ‘육방부’로 불려왔다. 국방부의 핵심 요직을 육사 출신 현역과 예비역이 독차지해왔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10년 동안 국방부 핵심보직으로 꼽히는 국방정책실·전력자원관리실·인사복지실장을 지낸 사람 중 육사 출신이 83%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부, 군 인사에서 ‘육사 독식’에 제동을 걸고 있다. 육사 출신인 서욱 국방장관 취임 이전까지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공군, 해군 출신, 비육사 출신이 맡았다. 이에 대해 육사 출신들은 ‘국방장관, 합참의장은 내줘도 육군참모총장은 절대 안 된다’고 반응했다. 육군 인사권을 쥔 육군참모총장은 ‘육사 순혈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꼽혔다. 1969년 이후 줄곧 육사 출신이 육군참모총장을 맡아 왔다.

학군(ROTC) 출신인 남영신 대장이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남영신 총장이 육군 내 ‘출신 장벽’을 깨기를 기대한다. 군 수뇌부가 마치 육사 동창회처럼 짜이면, 의사 결정 구조가 수직성과 경직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요즘은 다양성이 대세인 시대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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