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광복절의 대규모 ‘태극기 집회’로 인해 전국에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어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은 후에, 개천절·한글날에 또다시 다수 집회를 강행하려던 단체들이 조건부 제한에 부딪히자 “정치방역” “독재자”라며 맹비난했다. 감염병 위기 속에 자유와 안전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어려운 과제다. 그런 가운데 이처럼 격앙된 정치집회들은 깊은 우려를 낳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난 수년간 계속된 ‘태극기 집회’의 참여자들이 누구며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태극기 부대’ 하면 선글라스와 군복, 고성의 군가 방송, 과격한 투쟁이 떠오르지만, 우리는 또 주변의 평범한 친지들 중에 ‘열성 태극기’를 보기도 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만연해 있는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고 실상을 봐야 한다.
첫째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필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의 다양성’ 에스에스케이(SSK)연구단의 2020년 조사에서 태극기 집회 경험자는 5.4%나 됐다. 200만명이 넘는다. 또한 단순히 ‘티케이’(TK) 현상도 아니다. 전체 참가자 중 비중은 서울 사람이 많고, 지역별로 참가자 비율은 충청, 경상이 가장 높다.
둘째는 ‘비자발적 참여’라는 추측이다. 보수단체가 동원했거나 일당을 주고 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는 조직에 속해 있지 않을뿐더러, 조직적 참여가 곧 비자발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연세대 김왕배 교수의 2017년 연구는 오히려 이들에게서 강렬한 분노와 애국적 자긍심을 발견했다.
셋째는 ‘루저’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사회 변화에 낙오된 패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가톨릭대 장우영 교수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태극기 집회 참여자는 고소득층부터 저소득층까지 고루 분포했다. 고용형태상으로도 정규직, 자영업, 학생, 주부 등 다양했다.
넷째로 ‘노인 집회’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초기에도 평균 참여자 연령은 60살 미만이었다. 상기한 2020년 조사에서 연령대별 참여 경험자 비율은 20대가 6.9%, 30대가 8.6%로 노인층보다 높았다. 현재 2030은 진보성향이 가장 강한 연령층인데, 그 연령대에 이런 강경보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태극기 집회는 다양한 연령·소득·직업 계층의 사람들이 강한 자발적 동기로 참여하는 우익 정치운동 현상으로 봐야 한다. 단순히 동원·매수된 노인이나 루저·폭력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더욱 위험할 수 있다. 대중 동원의 지속성, 다양화된 참여자층, 강화된 조직적 토대 위에 극단주의의 내용이 채워진다면, 대한민국에 ‘극우의 세력화’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보수’가 아닌, 위험한 ‘극우’ 세력이 누구인지 감별할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동안 세계 학계의 수많은 연구는 극우의 몇가지 전형적 특성을 발견했다.
첫째는 민주주의 체제의 부정이다. 자유, 민주 구호를 외친다 해도 실제론 정부조직, 대의·사법기구, 언론 등 정치·사회제도를 전면 불신한다. 둘째는 점령 이데올로기다. 진보좌파, 공산주의자, 유대인, 무슬림 등이 사회 전체를 점령해서 조종한다는 망상과 음모론을 갖고 있다. 셋째는 전체주의 문화다. 제복과 총기 착용, 군가, 전쟁의 언어, 개인숭배 등이 식별 지표다. 넷째는 혐오·배제·절멸의 담론이다. 특정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여 사회에서 추방·제거하려 한다. 끝으로 폭력성이다. 증오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함으로써 그것을 고무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이들 중에 누가 진정한 보수이고, 누가 보수를 사칭하는 극우인가? 이 문제에 대해 보수 시민들, 그리고 무엇보다 보수의 정치지도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보수와 극우가 한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판이다. 보수가 진보와 당당하게 경쟁하지 않고 극우와 손잡을 때 민주주의는 끝이 난다. 무능한 보수만이 폭민에게 기대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극우’는 참여정부 중반기에 탄생했지만 더 깊은 뿌리는 독재 시절의 우익 정치테러와 양민학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폭력적 언어와 상징, 사고 구조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 이 위험한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보수와 진보 정치,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수’가 한목소리로 극단주의와 증오의 정치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고 강력하게 전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