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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물은 제 갈 길을 간다 / 노은주·임형남

등록 2020-10-13 16:30수정 2020-10-14 02:41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인데, 물과 같다는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사뭇 다를 것이다.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고 설명한다. ‘다투지 않는다’(不爭)는 해석이 좀 어색하지만 대강 노자가 전달하고자 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아들을 수는 있다. 그러나 물은 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론 무섭게 돌변한다. 그래서 옛날엔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치수(治水)였다. 하지만 치수라는 말처럼 무모한 단어가 없다. 왜냐하면 물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피하고 화해해야 하는, 인간보다 훨씬 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오랜 경험으로 그런 지혜를 터득했고 생활에 적용했다. 물이 흐르는 자리를 피해서 집을 앉히고 묏자리를 찾았다. 그런 지혜가 우리나라의 땅에 대한 사상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풍수는 발복하고 장수하기 위한 미신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한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지혜이다.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리고 두꺼운 콘크리트 옹벽으로 막아놓은 방어막이 어느 날 하루 내린 비에 힘없이 쓰러지던 모습을 보며 그걸 알 수 있었다.

특히 건물을 짓는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치밀한 방수는 물론이고 물이 잘 빠지도록 도와주는 적정한 구배의 빗물받이, 벽을 타고 들어오지 않게 하는 물끊기 등 다양한 장치를 해두지만, 지난여름처럼 유례없이 긴 장맛비에는 내내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불규칙한 패턴의 장마나 집중 강우에 대비하려면 홈통의 규격을 더 키운다든가 처마를 보완한다든가 하면서 방수 대책을 개선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기후의 변화 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 큰 우리나라에 맞는 유지관리 방식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사실 가장 완벽한 방수 대책은 물을 막지 않고 잘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우리의 오래된 방식이기도 하다. 옛집들을 보면 경사 지붕에 기왓골을 내고 홈통 없이 물이 처마를 통해서 바로 마당으로 빠지도록 만들어놓았다. 빗물이 고이거나 막힐 염려가 없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결 방법이고,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공존하는 방식이었다.

‘상선약수’에 현대적인 주석을 단다면 아마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과는 다투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물이란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고 가두어도 물은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므로 피하고 비켜서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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