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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같거나 다르거나] 권력구조가 난폭한 시대를 만든다 / 김용태

등록 2020-10-14 17:53수정 2020-10-15 02:39

지금과 같은 검찰 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검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검찰보다 훨씬 더 힘이 센 공수처를 만들어서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검찰의 권한 자체를 대폭 축소해서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게 해야 검찰개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금태섭

김용태 ㅣ 정치인

사모펀드 시장이 사기꾼들로 인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로 사지에 내몰린 투자자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사기꾼들의 불법 행각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분노를 안긴 것은 다름 아닌 검찰의 행태였습니다. 사기 핵심 주모자가 제 입으로 권력과의 결탁 사실을 털어놓았는데도 검찰은 이를 은폐하고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권력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검찰총장은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거창하게 거악 척결이라는 검찰 사명을 들먹일 것도 없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검찰이 보인 작태는 스스로 자신의 존립 이유를 짓밟은 것입니다. 권력에 완벽하게 장악당한 추악한 검찰의 자화상입니다.

금태섭 전 의원께선 검찰개혁의 본령은 권력이 굳이 장악할 이유가 없도록 검찰 권력을 축소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인정합니다. 피의사실 공표, 별건 수사 등 부당한 관행도 근절해야 한다는 말씀도 옳으십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권력에 완벽하게 장악당한 지금의 검찰을 어찌해야 할까요? 곧 실체를 드러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또 얼마나 권력의 논리대로 움직여 나갈까요? 검찰한테서 막대한 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이 과연 권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적법하고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까요?

결국 검찰을 포함한 사정기구의 개혁은 사정기구 그 자체보다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세상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는 구조, 나아가 정의와 윤리마저 제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결코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금 전 의원께서 말씀하신 기본소득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기본소득 도입 논의에 적극 찬성입니다. 도도한 시대의 변화가 지금 우리로 하여금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늦출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기본소득의 폭과 깊이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동안 보수는 어르신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 등을 제외하고 선별복지를 복지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습니다. 보수가 보편복지에 소극적이었던 데는 감당 못 할 재정 부담을 미래 세대에 지워서는 안 된다는 책임의식과 근로의욕 저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인식 때문이었습니다. 기본소득도 이런 관점에서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인식되었고 논의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일시적이긴 하지만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 성격의 재난지원금 물꼬가 터졌고 일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국민의힘이 기본소득을 주요한 경제정책 과제로 채택한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금 전 의원도 잘 아시다시피 보수가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하게 된 것은 복지정책을 어떻게 개혁할지에 대한 방법론의 일환이었습니다. 복지 대상자의 선별 과정과 전달 체계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었죠. 그러나 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은 불평등 구조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산업혁명 이후 급속하게 생산력을 증대시켜왔습니다. 그 결과 한 사회의 번영의 총합은 커져왔습니다. 하지만 번영의 총합이 커진 만큼 내부에선 번영의 불평등이 심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AI·에이아이) 혁명은 상상 그 이상으로 생산력을 증대시켜 번영의 총합을 키우는 반면 번영의 불평등은 더 극적으로 확대시킬 것입니다. 에이아이 혁명은 완전고용 시대에서 노동 없는 시대로의 전환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에이아이가 사람의 노동력을 상당 부분 대신할 것이 확실합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기름을 부었고 전환의 속도는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노동 없는 시대는 소비 주체를 왜소화하고 그 결과 생산력이 무력화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소득은 노동 없는 시대 개인의 행복을 지키는 보루이자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도입에는 여전히 현실 가능성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지만, 에이아이 혁명이 몰고 올 노동 없는 시대를 산업 시대 논리로 대응할 수는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금 전 의원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정책 이념 대결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을 향한 진영 대결만이 난무하는 이 난폭하고 무책임한 시대를 넘어 기본소득을 객관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시대를 위해서라도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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