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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명랑진보 김종철과 복지국가를 / 우석진

등록 2020-10-20 17:05수정 2020-10-21 14:20

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진보진영의 슬로건 중에 인상적인 구호들이 많았다. 권영길 후보의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는 90년대 말 아이엠에프(IMF) 위기를 겪은 고단한 노동자들에게는 큰 울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구호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부자에게는 세금을, 서민에게는 복지를, 청년에게는 일자리를”이다. 지금 보아도 이만큼 원론적이면서도 선명한 선거구호는 없었던 것 같다. 선거구호는 아니지만 노회찬 전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 연설인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도 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새벽 4시 출발하는 6411번 첫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에 대한 얘기였다. 노회찬 전 의원은 진보 정치인들이 서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거기임을 적시하였다.

현재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은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을 배출하면서 복지국가를 향한 큰 어젠다를 이끌어왔다. 무상급식이 그러했고 52시간 노동시간 정책이 그러했다. 당시에는 그런 거 하자고 하면 급진 좌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역사의 큰 물줄기를 트는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후의 진보진영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을 생산해내는 데 실패했다.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했다. 지역구 1석과 비례대표 5명의 의원만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진보진영에서 보면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최근 정의당의 당대표 선거에서 김종철 대표가 원외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결선투표에서 유일한 원내 후보 배진교 후보를 누르고 55.6%를 득표하여 정의당 6기 당대표가 되었다. 무난하게 가서는 정의당의 미래가 어둡다는 당원들의 선택이었다. 명랑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진보진영의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는 묵은 정치인 김종철에 대한 기대가 담겼던 것 같다.

당대표 선거 과정과 수락연설을 통해 드러난 김종철 대표의 다양한 정책 어젠다가 신선하다.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 정당들과 경쟁하여 정책 이슈를 이끌어 나갈 만한 것들이다. 특히 “복지국가”를 위한 정책들은 기존 정당들에서 주저하던 것들이어서 기대가 된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특수직역 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이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에 문제가 있거나 조만간 문제가 발생하리란 건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재정적 문제가 발생한 특수직역 연금에 대해서는 정부 재정으로 보조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의 거센 반대에 직면할 것이 분명한 연금통합 문제는 진보 쪽에서 보면 금기어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김종철 대표는 이른바 “공평한 노후”를 위해 연금통합 문제를 제기하였다. 기존에 논의되지 못했던 의제를 진보 쪽에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제안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다. 김 대표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두번째 눈에 띄는 정책은 조세정책이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조세체계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조세부담 수준이 낮고, 과세기반이 좁아 세수를 창출하기 어렵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면세자 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있다. 집권여당과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핀셋 증세와 국가채무를 통해 재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재원조달 계획이 없으면서 복지국가로 가겠다고 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대표의 보편적 누진증세는 상식적이면서도 복지국가를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김 대표는 하위 6%를 제외하고 높은 소득세를 부담하는 스웨덴의 예를 들었다. 이후에 구체적인 안이 나오겠지만, 국민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인기 없는 증세 문제를 꺼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 외에도 기본자산제도, 전국민고용소득보험, 노동개혁에 대한 의제들도 눈여겨볼 만한 경제정책이다. 우리 사회가 저출산, 불평등, 양극화 문제 등 총체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기존 정당과 차별된 선명한 진보적 의제들은 우리 사회를 한 발짝 앞으로 이끌고 나갈 것이다. 김 대표가 이끄는 정의당의 복지국가를 향한 정책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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