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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한민의 탈인간] 기후 수치(climate shame)

등록 2020-10-25 16:14수정 2020-10-26 02:37

김한민 ㅣ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그동안 우린 잘도 아이들을 팔아왔다. “후손” “미래 세대”… 연설들 속엔 늘 존재했다. 그리고 마침내 왔다, 정말로 그들을 위해 뭔가 보여줄 때가. 그러자 갑자기 그 많던 어른들이 사라졌다. 무책임한 애어른만 즐비하다. 지금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대하는 자와 아닌 자. 전자는 소수이고 학생, 청년층이 많다. 기후변화가 그들의 미래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기성세대와 전혀 다르다. 고용불안과 고도경쟁으로 찌든 풍경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가 암담한 그늘을 제대로 드리웠다. 그들에게 ‘힘내, 잘될 거야’라는 말은 위선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잘될 리가 있나. 그러니 잘라라, ‘격려’하는 그 손을….

모든 젊은 세대가 기후에 반응하는 건 아니라서 각성한 이들은 ‘기후 우울’을 겪고 고립되기 쉽다. 나에겐 그들의 예민함이 희망이지만, 그들의 가장 큰 절망이 다름 아닌 우리란 걸 안다. 실컷 망쳐놓은 지구를 물려주곤,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늘 하던 대로 ‘해먹고’ 있으니. 일상의 실천도 안 보이고, 거시적인 정책들도 거꾸로 간다. 그들은 애써 좋게 보려 노력도 한다. 설마, 어른들도 한편에선 고민들을 하겠지? 순진한 기대다. 그들은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선 ‘구린’ 뉴딜, 신규 석탄발전소 공사,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 같은 일은 불가능하다. 이제 명확해졌다. 기득권과 기성세대에게 기후는 남 얘기다. “날씨는 늘 변해왔고, 살아생전엔 별일 없으리”라는 게 그들의 인식 수준이다. 이 태도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번역된다. “누릴 만큼 누리다 가마. 엿 먹어봐라.”

한국의 젊은 세대는 그래도 착하다. 코로나가 평등하지 않아 가진 자와 젊은 몸보다 중장년층에 더 치명적임이 드러났음에도, 생물학적 ‘강자’인 젊은 층이 협조를 잘하는 편이다. 외국에선 나 몰라라 파티에 빠진 이들도 많은데. 어쩌면 진짜 필요한 딜은 ‘세대 간 뉴딜’이다. 자, 우린 덜 취약한데도 방역에 열심히 동참해줬잖아. 이제 당신들 세대도 기후에 신경 좀 써줄래? 코로나19도 기성 체제의 산물임을 고려하면 사실 백번 양보한 거래인데도, 철저히 배신당한다. 자기 건강들은 소중해 ‘코로나 인지 감수성이 낮아 방종하는 젊은 층’을 쉽게 비판하면서, 기후 위기 감수성은 처참하다. 대기오염 문제는 마스크 씌우고 공기청정기 사주면 끝이라고 여기는 것, 탈석탄, 에너지 전환 이슈를 진영정치화하는 것, 기후 난민 증가가 안보 위협, 대량 실업, 사회 붕괴로 이어질 리스크를 공상·과장으로 치부하는 것, 축산업의 환경파괴 때문에 채식을 하겠다는데 ‘그런다고 바뀌냐’며 핀잔주는 것… 모두 전지구적 생태 위기에 극히 둔감한 인식을 반영한다. 구세대의 민주화에 준하는 어젠다가 기후임을 이해하지 못하며, 줄곧 신봉해온 가치, 즉 “어쨌든 좋은 학교 나오고 부자면 무슨 위기든 유리할 테니 일단 돈과 학벌부터”를 가르치려 들어 기후 세대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수치스럽다. 기후 악당 국가의 국민이라서. 또 이렇게 된 데 책임이 큰 기성세대라서.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도 미안해 초면부터 사과를 하고 싶지만, 그조차 무책임하게 느껴져 접는다. 한 십대 활동가가 내게 물었다, 이 판국에 어떻게 힘을 내냐고. 힘? 솔직히 안 난다. 내 세대와 윗세대를 보면 대개 힘보단 화가 난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낸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우려고 뭐라도 한다. 이 수치심은 내 탄소 발자국만큼이나 쉽게 지워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 가열을 2도 이하로 막을 수 있는 시간이 10년도 채 안 남은 걸 알기에, 수치라도 연료로 태운다. 화석연료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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