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항미원조’가 불편하고 불쾌한 이유 / 권혁철

등록 2020-11-04 15:47수정 2020-11-04 18:38

1950년 10월25일 오전 평양. 미국 맥아더 장군이 며칠 전 평양을 점령한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일일이 미군 병사들의 어깨를 친근하게 쓰다듬었다. 이어 미8군 사령관인 워커 중장은 기자들에게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암시하면서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평안북도 운산군 온정리 양수동에서 한국군 6사단 2연대가 중국군과 전투를 벌였다. 중국 쪽 자료를 보면, 이날 오후 3시까지 국군은 325명이 전사했고 161명이 포로가 됐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의 첫 전투였다. 중국은 이 전투를 ‘양수동 서전’이라고 부른다.

중국 쪽 자료에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괴뢰’로 적혀 있다. 괴뢰는 꼭두각시 놀음에 나오는 인형으로 남의 앞잡이로 이용당하는 사람, 나라를 비유한다. 중국의 한국전쟁 공간사(Official History) 격인 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가 펴낸 <항미원조전쟁사>를 보면, 국군을 적위(敵偽) 남조선위군(南朝鮮偽軍), 이위군(李偽軍)이라 표기했다. 위군(偽軍)은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중국 내 괴뢰 군대를 총칭할 때 쓴다. 구체적으로 만주국 등 중국에 세워진 일본의 괴뢰 국가들의 군대, 중국 내 친일 무장단체들이다.

최근 불거진 ‘항미원조’ 논란에서 새삼 확인했듯이, 중국은 한국전쟁의 기본 성격을 자신들이 미국과 맞서 싸운 전쟁으로 본다.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을 미국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무시하고 ‘위군’이라고 부른다. 이는 사실과 맞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이다. 중국은 항미원조 기념일로 삼는 10월25일 운산군 온정리에서 미군이 아닌 국군과 처음으로 교전했다. 마오쩌둥은 북한에 들어가 첫 전투를 준비 중인 중국인민지원군 지휘부에 서부전선의 한국군 사단들을 먼저 섬멸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정리한 한국전쟁 3년간 연대급 이상 주요 전투 376건을 보면, 상당수가 국군과 중국군 사이에서 벌어졌다.

‘중국과 미국이 싸운 전쟁’이란 중국의 ‘항미원조’ 주장에 우리가 불편하고 불쾌한 것은 참혹한 전쟁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인 남북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남북 당사자들이다. 당시 남북한을 합친 인구 약 3천만명 중 거의 10분의 1이 죽거나 다치고 실종됐다.

50대 이상은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란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할 때 많이 불렀던 ‘승리의 노래’다. 가사에 등장하는 오랑캐는 ‘중공군'이다. 우리는 80년대까지 한국전쟁 때 중국군(중공군)을 남북통일을 가로막은 오랑캐(야만스러운 침략자)라고 여겼다. 1992년 한·중 수교 뒤 한·중 관계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더이상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지난달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이 “역사를 거울 삼아 미래를 향하고 평화를 아끼며 우호를 도모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하며 함께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한국전쟁 인식이 계속 과거에 머물지 미래를 향할지 궁금하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