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서 동물권 지지자와 장애 인권 지지자 사이에 격렬한 설전이 벌어졌다. ‘불법’에 대한 비난은 익숙했지만 개, 돼지를 무시하지 말라는 공격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없던 사람들에게 불행히도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짐승 취급’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새로운 적들이 그저 신기했다.
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2016년 어느 날 나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12개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농성이 진행 중이던 4년 동안 불에 타 죽고 맹장이 터져 죽고 시설에 감금된 채 맞아서 죽은 장애인들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많이 죽을 수 있을까. 죽은 자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여기가 세상의 밑바닥이구나, 생각했다. 장애의 경중에 등급을 매겨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애등급제는 실상 예산을 아끼려는 정부가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주지 않기 위해 악용하는 도구였다. 칼자루를 쥔 정부가 마구 휘두르는 칼날에 장애인들의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시민들에게 몸통이 잘린 ‘한우 1등급’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장애인은 소, 돼지가 아니잖아요”라며 서명을 부탁했다.
2020년 어느 날 나는 경기도의 도살장 앞에 서 있었다. 살아 있는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끊임없이 도살장 안으로 들어갔다. 죽음의 속도에 나는 압도되었다. 장애인의 현실을 비유하기 위해 동원했던 존재들의 진짜 현실이었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장애인들이 철수한 자리에 그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겁에 질린 돼지들 옆에 한 무리의 인간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동물을 감금하고 강간하고 새끼를 빼앗고 살해하는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며 그것을 ‘종차별’이라 불렀다. 몹시 충격적이면서도 익숙한 말이었다. 아니, 익숙했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 ‘동물’의 자리에 ‘장애인’을 넣으면 그것은 내가 무수히 반복해온 말이었다. 나는 이 놀라운 존재들을 나의 동료들에게 달려가 알려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한마리 짐승처럼 말도 함께 잃은 기분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걸리는 것이다.
3년 전 장애인들은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이름)이다’라는 선언을 장애심사센터 건물의 외벽에 붉은 페인트로 커다랗게 쓰는 시위를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퍼포먼스가 동물을 차별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온라인상에서 동물권 지지자와 장애 인권 지지자 사이에 격렬한 설전이 벌어졌다. ‘불법’에 대한 비난은 익숙했지만 개, 돼지를 무시하지 말라는 공격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없던 사람들에게 불행히도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짐승 취급’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새로운 적들이 그저 신기했다. 인간이 아니라 ‘개, 돼지’에게 감정이입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과, 그런 입장을 ‘우리를 개, 돼지 취급하지 말라’ 외치는 장애인들 앞에 드러내는 용기가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이었던 나와 달리 이 위험한 전장에 뛰어든 사람들은 그날 밤 몹시 진지했고 그만큼 상처 입었다.
이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개와 돼지들이 어떻게 살고 살해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들의 편에 서지는 못할 것 같다. 장애인이 어떻게 살고 죽는지 잘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정말로 어렵게 하는 건 내가 비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한번도 ‘짐승 취급’ 당해본 적 없는, 인간임을 입증하기 위해 이번 생을 다 쓰지 않아도 되는 이미 충분한 인간 말이다. 그의 문제 제기는 옳았지만 나는 그를 옹호할 수 없다. 동시에 나는 우리를 옹호하면서도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인간들과 ‘인간도 동물이다’라고 외치는 동물들의 사이는 내가 경험한 가장 가깝고도 먼 거리다. 한마디를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장애인들이 수십년간 싸워서 얻은 자그마한 성과를 짓밟게 될까봐, 무엇보다 나의 동료들에게 미움받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짐을 끄는 짐승들>(오월의봄, 11월 출간 예정)은 이렇게 시작하는 책이다. “동물산업 곳곳에 장애화된 몸이 있다. 또한 동물과 장애인이 억압당하는 방식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동물과 장애를 둘러싼 억압이 서로 얽혀 있다면 해방의 길 역시 그렇지 않을까.” 책을 펼치자마자 신이 나서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가진 수나우라 테일러는 어떤 몸들을 열등하다고 낙인찍고 감금하고 때리고 죽일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한 동물해방도 장애해방도 이뤄질 수 없음을 치열하게 보이며, 짐과 짐승으로 제시되어온 이들이 서로를 끌어주며 함께 나아가자고 손을 내민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인간들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동물들이 함께 둘러앉아 이 책을 읽고 싶다. 경쟁과 효율, 이성과 언어를 중심에 두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하며 서로가 꿈꾸는 세계가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기쁘게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