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표 Ι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미국의 대선은 치열한 공방 끝에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최종 정리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대로 대선 불복과 소송 카드를 꺼내면서 대립과 분열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경합주에서 대역전극이 벌어지자, 바이든은 지난 5일 정권인수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대선 승리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첫날 파리협정에 복귀할 것임을 밝혔다. 미국의 파리협정 복귀가 전 세계에 내놓은 대선 승리의 첫 메시지인 것이다.
파리협정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아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은 2015년 파리협정 타결을 주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다섯달 만에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고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난 4일 미국의 탈퇴가 공식 발효됐다. 이런 배경에서 바이든 후보가 대선 승리를 예고하면서 파리협정에 복귀하겠다고 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바이든은 대선 공약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친환경 정책을 내걸었다. 환경 분야 공약의 핵심은 저탄소 청정에너지 인프라 계획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는 2조달러 규모의 막대한 예산을 4년 동안 투입해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부터 화석연료 소비 감축 노력을 펼쳐왔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화석연료 규제 완화에 반대했고 파리협정 탈퇴를 무효화할 것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친환경 투자에 필요한 재원은 법인세 인상과 부자 증세로 충당할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렸던 법인세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연소득 40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의 소득세율도 높일 계획이다. 이에 더해 연 100만달러 이상 초고소득층의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대폭 물리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요컨대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그린 뉴딜을 부자 증세를 재원으로 대폭 확장하는 것이 공약의 핵심 골자인 셈이다.
바이든의 파리협정 복귀 선언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제협약과 질서를 무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을 되돌리고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과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미리 밝힌 것이다. 물론 미국이 파리협정에 복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상·외교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크게 높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바이든의 통상 분야 공약에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환경 의무를 준수하지 못하는 국가나 기업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세가 들어 있다. 내년 초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추진 중인 유럽연합 ‘그린 딜’과의 국제공조 체제가 완성되고 친환경·저탄소 경제가 국제통상의 중심 이슈로 부상할 것이 명확하다. 세계 11위의 탄소배출국인 우리나라의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에 비추어볼 때, 탄소배출 감축은 경제 체질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매우 도전적인 과제이다.
올해 7월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선도국가 도약을 위한 한국판 뉴딜의 두 축으로 디지털 뉴딜과 함께 그린 뉴딜을 제시하고, 저탄소와 친환경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에너지 전환을 국정 과제로 삼고 그린 뉴딜에 이어 탄소중립을 선언한 문 정부의 최근 행보는 기후위기 대응 국제공조를 향한 발 빠른 대응이자 포석으로 평가할 만하다.
2050년 탄소중립을 국제사회에 공언한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 수소 경제, 석탄 감축 등 저탄소 경제 이행 계획을 마련하는 데 더 한층 속도를 내야 한다. 특히 석탄 감축 문제는 노사는 물론 지역주민의 의견 수렴이 중요하고, 일자리와 지역경제 전환을 위한 구조개선기금 조성도 필요하다.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에너지 관련 세제를 정비하는 한편, 탄소세 도입을 위한 공론화의 장도 마련해야 한다. 바이든의 당선은 그린 뉴딜과 에너지 전환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 중의 하나가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할 길임을 새삼 확인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