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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트럼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 신진욱

등록 2020-11-10 14:52수정 2020-11-11 02:4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현지시각)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개표소 앞에 모여, 개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현지시각)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개표소 앞에 모여, 개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던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승리가 분명해지면서 ‘트럼프 이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은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미국의 새로운 파워엘리트는 누구인지, 한국과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미국과 세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이제는 이런 것들이 화젯거리다.

하지만 트럼프의 시대가 끝났다고 성급히 선언하기 전에, 우리는 그의 재임 동안 미국에서 터져 나온 증오와 폭력, 혐오와 차별, 민주주의와 법치의 파괴, 공적 국가의 붕괴와 권력의 사사화가 어떻게 가능했으며 누가 거기에 책임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트럼프의 시대를 탄생시키고 떠받친 구조는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오래 남을 것이며, 만약 우리가 트럼프 임기의 종료와 더불어 그 하부구조를 함께 망각한다면 머지않아 다른 이름의 트럼프가 어디선가 재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럼프를 악당으로 만들어 만악의 근원으로 치부하는 담론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리버럴 지식인과 언론, 서유럽의 주류 세력들은 트럼프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아왔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질도 갖추지 못한 트럼프가 미국인 절반의 지지를 받는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 이전의 세계를 돌아보라. 2007년 미국 주택금융시장 붕괴, 2008년 세계경제 위기, 2009년의 남유럽 부채 위기로 이어진 고통의 시간 동안 수많은 하층민과 중산층이 파산, 실업,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2011년 5월 스페인 60개 도시에서 터져 나온 항거의 이름은 ‘분노한 자들의 운동’이었고 그들의 슬로건은 “정치와 은행의 손에서 민주주의를 되찾자”였다. 같은 해 가을에 미국 전역을 휩쓴 월가 점령 운동은 ‘1% 대 99%’의 미국 사회를 규탄하고 있었다. 트럼프 ‘이전’ 얘기다.

트럼프의 시대는 이처럼 우아한 민주주의 정치가 대자본, 은행, 투기꾼들과 손잡고 춤춘 위선의 무도회에 오물을 끼얹으며 시작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피억압자의 반란이 아니라, 모든 선하고 아름답고 올바른 것에 대한 환멸, 그것이 부재한 세계의 추악한 침전물들의 부상이었다.

백인우월주의와 여성혐오, 정치권력의 후원 아래 자행된 증오폭력, 민주적 규칙과 관용의 파괴, 법치주의를 유린한 권력 남용, 탈진실의 정치도구화, 도덕성에 대한 경멸, 극단적인 증오의 언어. 이 모든 파괴적 힘이 솟아올랐고, 그 힘을 자극하고 규합하여 정치적 자원으로 만들 줄 알았던 자가 바로 트럼프였다.

말하자면 미국의 민주주의와 여성, 흑인, 라티노 이주자들을 죽인 것은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그와 손잡고 칼춤을 춘 ‘트럼프 세력’이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무엇보다 백인 중산층과 남성 산업노동자들이다. 여기에는 인종, 젠더, 계급이라는 여러 결의 불평등이 교차한다. 흑인, 여성, 이주자 등 배제되어온 집단의 지위가 성장하면서 이들을 향한 공격과 반발이 커진 것이다.

이런 사회 환경이 트럼프의 집권이라는 정치 변동으로 이어진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위력에 힘입은 바 크다. 현대 민주정치의 근저에는 인민주권의 신념 체계가 있는데, 선동가들은 민주주의 제도의 규칙을 파괴하면서 인민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획득한다. 이 지점에서 트럼프는 탁월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트럼프의 시대는 기존 체제의 많은 조력자를 필요로 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보수 세력의 기회주의는 트럼프 체제의 불가결한 일부였다. 그들은 종종 트럼프에 격렬히 반발하며 품위를 지키려 했지만, 민주당과 진보주의자들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민주주의 파괴에 협력했다.

이처럼 트럼프 시대는 많은 공범자를 갖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를 막아내지 못한 진보주의자들, 사회적 배제에 동참한 백인 중산층과 남성 노동자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 붕괴에 동참한 보수주의자들이 그들이다. 이 거대한 공범 구조는 지금도 견고하다. 트럼프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깊어가고,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은 미약하며, 야만적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인격 살인이 만연한데, 그들은 이익을 지킬 노조도, 위로받을 공동체도 없이 홀로 분노를 견디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무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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