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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민주주의의 못생긴 꽃 / 손아람

등록 2020-11-11 15:21수정 2020-11-12 14:05

손아람 ㅣ작가

민주주의의 꽃은 투표라고 한다. 꽃의 모양은 나라마다 다르다. 간접 선거로 치르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상대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패배하기도 한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는 총득표에서 앞서고도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역전당해 패배했고, 이번 대선에서는 반대로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 역전극으로 당선을 결정지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시스템은 패자의 불복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경합주 하나에서 선거 결과가 뒤집히면 전체 승패가 바뀔 수도 있다는 미련을 후보들이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부통령이 필요해>는 선거 과정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 후보였던 마이어는 대패를 품위 있게 인정하려고 상대 후보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통화하던 중 펜실베이니아의 개표 결과가 바뀌어 당선자 신분이 되어버린다. 관행에 따르면 패자가 먼저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데, 이미 연결된 전화를 그냥 끊을 수도 없다. 그는 좌절감에 사로잡힌 상대 후보를 향해 비수를 꽂는다. “혹시 지금 저한테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기이한 선거 형식을 가진 나라로는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유권자들이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적어내는 방식을 고집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투표용지에 쓴 이름의 획 하나만 틀려도 무효표로 처리하면서도 후보의 별명이나 나이를 적어내면 또 유효표로 인정해준다. 일본의 선거 개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오집계가 빈번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정치 신인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고 유력 가문이 지역구를 세습하는 이유로도 자주 거론되지만, 기성 정치인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바뀔 기미가 없다.

일본의 투표제도를 함부로 조롱하지는 말자. 한국은 이름 대신 숫자로 정치인을 뽑지 않냐는 반격을 당하기 십상이니까. 정당 의석수에 따라 후보 순번을 일률적으로 배정하는 투표제도를 가진 나라는 주요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한국과 독일뿐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선거기간 자신의 이름보다 기호를 더 강조한다. 여당과 야당의 기호 순번이 처음으로 바뀐데다 12명이나 되는 후보가 출마했던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경향은 두드러졌다. 이 선거는 경마 시합이나 다름없었다. ‘1번만 생각하면’ 정동영, 기호 2번 ‘2명박’, ‘3고초려’ 권영길, ‘4번타자’ 이인제, ‘왠지 잘될 것 같은 6감’의 문국현…. 이전 두차례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호 1번을 받았지만 기호 12번으로 밀려난 이회창 후보는 익숙한 엄지손가락 제스처를 버려야 했다. 대신 손가락 열개를 펼친 두 팔을 번쩍 드는 새로운 포즈와 함께 돌아왔다. 캠프의 누군가 손가락이 부족하니 두 팔의 개수를 보태자고 제안했을 게 틀림없다.

선거 유세에서 숫자가 너무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기에,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선관위는 손가락 제스처를 불법으로 판단했다. 한편 지난 총선에서는 여당과 제1야당이 위성정당에 비례대표를 몰아주느라 후보를 내지 않아서 투표용지에 표기된 비례정당 기호 순번이 3번부터 시작하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기호 순번제는 선거를 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범이다.

기호 순번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나라는 순번을 추첨으로 배정하고 있고, 우리도 처음에는 추첨으로 순번을 배정했다. 의석수가 기호에 연동된 것은 기호 6번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재선을 앞두고 선거법이 바뀌면서부터다. 기술의 발전으로 투표용지 인쇄나 집계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요 프로그램, 댓글창, 포털 뉴스난에서도 폐지된 순번 제도는 여전히 투표 시스템에만 존속하고 있다. 선거법을 바꾸려고 나서는 국회의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투표지 상단에 이름이 놓이면 선거가 ‘왠지 잘될 것 같은 6감’을 아무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 육감은 자신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지능이 ‘왠지 모자랄 것 같은 예감’과도 같다. 정말 그런가?

우리도 언젠가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정치인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 보게 될 추잡함은 후보의 몫이지 투표제도의 몫은 아니다. 트럼프는 적어도 ‘기호 1번’이 아니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장엄한 구호로 기억될 정치인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공정한 투표제도를 가졌다. 이제 우아한 투표제도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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