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원 ㅣ 국제뉴스팀장
돌발 행동이 잦고 언론의 주목을 즐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 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한·중·일 3개국은 여러 의전 방법을 짜내곤 했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 성향을 파악해 꼼꼼히 준비한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를 선보였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방일 때 아베 신조 총리가 같이 골프를 쳤다. 이때 아베 총리는 프로 골퍼를 대동했을 뿐 아니라 사전에 골프 연습도 따로 했다.
중국은 2017년 트럼프 방중 때 8704칸 자금성을 통째로 비우는, 스케일이 다른 대접을 했다. 한국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깜짝 회동을 주선했다.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깜짝 또는 개인 맞춤형 이벤트를 선호할 것 같지 않으며, 대외정책도 트럼프 행정부와는 아주 달라질 것이다. 36년 상원의원 그리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8년간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당선자와 대통령 취임 이전에 공직 경험이라고는 한차례도 없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색깔 차이는 극명하다.
바이든 선거캠프 누리집에 적힌 대외정책도 전통적 외교정책을 확인하는 모범 답안이다. 전통적 우호 관계를 회복하겠다며 가장 먼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강화를 꼽았다. 마지막에 “우리는 또한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다른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와의 동맹을 강화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 바이든은 우리 협상가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며,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우리의 동맹국들 및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 지속적이고 조정된 캠페인을 할 것이다”라고 했다.
현재까지 나온 바이든 당선자의 한반도 관련 정책은 추상적이며 낯익다.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문구도 숱하게 봐왔던 표현이다. 그래서 바이든 당선자가 부통령이었던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갈지 말지 논란이 있다. 전략적 인내라는 말은 2009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전략적 인내를 갖고 (북한에) 접근 중”이라고 말한 데서 나온 용어로,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먼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도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방치해 ‘전략적 수동성’ 정책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정책이다. 2013년 존 케리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은 북한이 행동하지 않으면 보상은 없다는 기조를 재확인하면서, 미국의 정책은 “전략적 인내”가 아니라 “전략적 비인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이처럼 전략적 인내 정책은 여러 비판을 받았던 정책이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이후 곧 이 정책으로 복귀를 천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 정책 최우선순위가 한반도 문제는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방역 대책과 침체된 경제 상황 같은 미국 내 해결해야 할 현안도 쌓여 있다. 전략적 인내라는 말을 다시 쓰지는 않을지라도, 바이든 행정부의 북핵 문제에 대한 관여와 관심은 점점 줄어들 수 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최근 “아마 한국이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북한에 관한 이슈를 주도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가 다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미국의 소리>는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가 아닌 적극적 대북정책을 추진하게 촉진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한국이 진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난한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내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의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그런 노력의 하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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