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5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과 함께 연단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강국 ㅣ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결국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이겼지만 내용은 꽤나 불편한 승리였다. 이번에도 많은 이들은 바이든의 낙승을 전망했지만 7300만명이나 되는 유권자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고 경합주에서도 트럼프는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다. 블루웨이브를 기대했던 의회 선거의 결과도 민주당에 실망스러웠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었던 저학력 백인과 노인계층의 지지는 전보다 줄었지만 히스패닉과 저학력 유색인종의 트럼프 지지는 오히려 증가했다.
2016년 트럼프의 등장은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와 그 패자들의 불만을 동력으로 한 것이었다. 경제의 양극화는 정치의 양극화를 낳는다. 실증연구들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더 노출된 선거구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평등이 높아지며, 그런 지역에서 정치적 지지가 좌우로 더 극단적으로 변했다고 보고한다.
이제 미국은 지역적으로도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한쪽으로 치우친 선거구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아졌다. 바이든을 지지한 지역은 주로 대도시 중심지였는데, 이들 지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70%를 차지하여 2016년 선거 때의 64%보다 더 높아졌다. 학력과 소득이 높고 자동화의 위험이 큰 일자리가 적은 지역이 이전 선거 때보다 더 많이 바이든을 지지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도 트럼프의 선전은 불평등의 시대에 엘리트들이 외면한 소외된 이들 때문이었다. 그가 퇴장한다 해도 트럼프주의는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팬데믹이 가져다준 깊은 불황으로 이미 일자리와 소득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트럼프식의 국수주의적 포퓰리즘과 금권정치의 결합이 공화당의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고학력자와 고소득자의 당이 된 민주당의 주류는 불평등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이번 의회 선거에서도 약진한 쪽은 급진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로 대표되는 민주당의 좌파 진영이었다.
바이든의 경제학은 이러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의 주된 경제 정책은 재정지출 확대와 부자 증세다. 바이든 캠프는 클린에너지 등에 대한 약 2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교육과 양육에 약 2조달러, 그리고 의료보험과 미국산 제품 구매, 연구개발, 사회복지와 주택 등을 포함한 총 7.3조달러의 재정지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내총생산의 약 35%나 되는 금액이다.
한편 소득 40만달러 이상 구간에 대한 최고세율을 37%에서 39.6%로 인상하는 등 세금을 올리고 트럼프가 21%로 크게 낮춘 법인세를 28%로 높여 재정지출 계획의 절반 이상을 충당할 계획이다. 또한 최저임금 15달러로의 인상과 노조 할 권리 등 노동자들의 권익을 강화하는 조치들도 제시했다. 이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좌클릭’한 계획으로 평가되지만 전국민 단일의료보험과 같은 진보적인 정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바이든의 경제 정책은 불황과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자본주의의 건강한 작동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지출은 10년에 걸친 계획이며 의회에서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파가 되지 못하고 대규모 재정확장이 불가능하다면 오바마 정부 때와 비슷하게 경제회복이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바이든의 정책으로 트럼프 대통령 때에 더욱 악화된 불평등의 추세를 되돌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2015년 0.479에서 2019년 0.484로 높아져 소득불평등이 2차대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의 숨은 승자는 시장을 지배하며 막대한 이윤을 거두는 거대 기술기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의회와 행정부가 분열되면 이들에 대해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는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사이다.
코로나19의 극복, 경제회복과 불평등 개선,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여러 무거운 과제를 짊어진 바이든의 정책 슬로건은 ‘더 나은 재건’이다. 바이드노믹스가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고 미국을 더 나은 곳으로 재건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그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시민들의 정치적 지지와 압력일 것이다. 해리스는 당선이 결정된 뒤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행동이고 우리가 싸운 만큼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불평등이 낳은 트럼프주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재건을 만들어내는 힘도 민주주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