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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그 약속 이행하라 / 우석진

등록 2020-11-17 17:56수정 2020-11-18 02:11

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많은 노동자는 집을 나설 때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고 출근을 하지만 오늘도 6명의 노동자는 온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비단 사망 사고가 아니더라도 산업 현장에서 사고는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들 중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시장으로 양분된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일자리의 안정성, 노동 방식, 보상, 대표성 등 여러 부문에서 불평등과 격차 문제를 일으킨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분절 문제 또한 잠재한다. 노동시장의 분절이란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 격차와 이동성의 제약을 의미한다.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여간해서 그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분절적 이중구조를 가진 우리의 노동시장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왔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원청업체의 위험한 업무는 으레 하청업체가 맡게 되었다. 일반적인 경쟁 시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노동자에게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는 좀 더 높은 임금을 보상받을 뿐만 아니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도 제공되어야 한다. 노동경제학에서는 이를 ‘균등화 격차’(equalizing difference)라고 한다.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균등화 격차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분절적 이중구조의 노동시장 아래에서는 다단계 하청 과정을 거쳐, 좀 더 낮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오히려 원청업체는 산업재해 발생 정도를 줄일 수 있어 산재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산재로 인한 법적인 책임도 회피할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하는 것이 원청 기업의 유인 체계에 부합하게 된다.

그러던 중 서부발전 사내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 12월10일 홀로 밤샘근무를 했던 노동자 김용균씨는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 사고로 숨지게 된다.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개정되어 시행되기는 했다. 하지만 산안법은 행정법규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의무위반이 전제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고, 결과의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묻기 어렵다는 한계가 크다.

최근 정의당의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안전관리 주체를 기업과 경영책임자로 명확히 하고 해당 범죄를 기업범죄로 처벌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회적 재난과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유해 위험 방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위반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묻고, 도급 및 위탁 등 형식을 불문하고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도록 한다. 나아가 법인의 책임을 강화하고 행정책임자인 공무원의 관리감독 책임을 부여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및 행정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에는 부담이 되는 법률이 맞긴 하다. 하지만 노동자가 노동 중 직면해야 하는 위험을 경영진과 책임자가 제대로 인식해 위험을 내재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경영진이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정확한 비용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이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한다. 끝까지 국민의힘이 이 정도의 포지션을 유지할지는 의문이지만, 이제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결심만 남았다.

민주당은 정의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진행할지, 장철민 의원이 제안한 산안법 개정안으로 할지에 대해서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제안한 산안법 개정안의 골자는 ‘경제적 제재’이다. 하지만 기존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금액보다 50만원 늘린 수준에 그쳐 민주당이 주장하는 기업의 행동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로 집권한 정부이다. 기존 산안법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없다면 책임을 내재화시킬 수 있는 쪽으로 진도를 나가야 한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호소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약속은 이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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