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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창조의 리더십은 따로 있다

등록 2006-01-22 18:09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 선임기자
아침햇발
2002년 대선에서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구시대의 구조물’을 철거하는 임무를 맡겼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고, 지난 3년 동안 그 일을 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온존해 있던 ‘돈선거 구조’를 대선자금 수사와 정치개혁으로 부쉈다. 또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던 ‘구 통치구조’를 위에서부터 스스로 무너뜨렸다. 21세기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이 두 가지는 어차피 걷어내야 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철저히 부쉈는지, 다음 대통령이 복구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정도가 됐다.

노 대통령 이전에도 ‘철거 전문가’가 또 한 사람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깡’ 하나로 정치군인들을 쳐부쉈다. 총으로 권력 기반을 유지하고 있던 하나회를 하루아침에 쫓아냈다. 그리고 군 출신 대통령 두 사람을 구속했다. 정·관계에 드리워져 있던 군의 그림자는 지워졌다.

발전을 위해서는 파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두 사람을 파괴자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냥 마구 때려부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의 ‘창조적 파괴자’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5년은 철거를 마치고 그 위에 다시 집을 짓기엔 너무나 짧다.

노 대통령은 지난 18일 밤 새해 연설을 했다. “임기 안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할 일은 뚜벅뚜벅 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옳은 말이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경제정책을 비롯한 국정기조가 흔들리지 않게 잘 ‘관리’하는 일이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말도 했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행정구역 개편, 공기업 구조조정, 연금 개혁, 조세 인프라 구축 등 공적인 영역에서 정부가 할 일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개개인, 특히 월급쟁이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정부가 그런 개혁을 충분히 한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지금 노 대통령이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 지지율이 너무 낮아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집권 4년차이고, ‘질서있는 퇴각’을 준비할 때다. 대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해야 하는 ‘큰일’이 무엇인지 잘 정리해 두어야 한다. ‘큰일’을 실제로 벌이는 것은 이제 차기 대통령의 몫이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국가의 앞날이 걸린 핵심과제들을 과감히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선거에서 국민의 ‘결재’를 받은 뒤, 임기 초반의 동력으로 ‘집행’을 해야 한다.

1·2 개각 파동으로 노 대통령과 정면 대립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이번 연설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태도’에 대해 “다행스럽다”고 일치된 반응을 보였다. 품위를 잃거나 막말을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진지한 자세가 괜찮았다는 것이다. 가슴을 졸였는데,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아서 안도했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 연말 노 대통령을 만나본 인사들은 노 대통령의 ‘정서적 상태’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다. 너무 기가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에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노 대통령을 좀 이해하고 달래가면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새해 들어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청 갈등에 잠시 비틀거리긴 했어도, 신항 개장식에 참석하고 선영을 방문하는 등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딛고 있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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